포스트잇 추모, 포스트잇 시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사건은 단순하다. 정신병을 가진 한 남자가 강남역 근처의 한 화장실에서 여성을 죽였다. 그런데 여기에 여성혐오라는 개념이 들어갔다. 이 남성이 여성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기에 이루어진 사건으로 이해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한 개인의 우발적 사건 가운데 여성혐오범죄라는 의미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한다. 강남역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기 시작했다. 한 가득 이룬 포스트잇의 담벼락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미안함, 분노, 동감과 슬픔을 내어놓았다.
구의역에서는 아직 스무 살이 안 된 한 청년이 죽은 일이 생겼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해서 산업현장에 뛰어들었고, 스크린도어 정비라는 일을 감당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의 가방에서 나온 나무젓가락과 숟갈, 그리고 사발면 하나는 그의 고단했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에 동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의역에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미안함, 분노, 동감과 슬픔이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포스트잇이다. 간단하게 메모하여 어디든 붙여 놓을 수 있는 편리한 메모지이다.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이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에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여 현장에 붙였다. 그것이 모이기 시작하자 문화를 이루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포스트잇 추모가 생겨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청년들이 약자의 죽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주 일어날 수 있는 범죄였고, 사고였지만 사람들은 관심을 가졌고, 그들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고, 포스트잇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자신들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했다. 이것은 우발적 사건으로 이것을 본 것이 아니라 이 하나의 사건 뒤에 있는 이 사회의 문제를 본 것을 의미한다. 즉 약자의 생명을 가벼이 보는 이 죽음의 사회를 향해 포스트잇의 돌을 던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포스트잇 추모는 새로운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딴지를 걸어본다면, 이 문화가, 이 시민의 움직임이 포스트잇 마냥 가볍게 끝나지 않을까하는 우려이다. 쉽게 붙일 수 있고, 흔적 없이 뗄 수 있다는 이 메모지의 장점처럼 이 움직임도 가벼이 끝나지 않을까하는 염려이다. 생명을 보고, 같이 분노하고, 함께 움직여 나간 것은 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동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면 마치 포스트잇 마냥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캐주얼한 방식으로 시민이 움직이고, 함께 하여 동력을 만들어낸 것은 이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정말 커다란 움직임이다. 이것은 새로움이고 큰 변화이다. 이제 이것이 나비효과가 될지 아니면 정말 포스트잇이 될지는 진정한 시민의 움직임이 결정할 것이다. 깨어있어 행동하는 시민이 이 사회를 민주스럽게, 그리고 인간답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성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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