띨띨이와 토란이
지난 한 주간 교회 공사가 있었습니다. 예배당에 딸린 화장실이 환기가 되지 않아 작은 창문을 하나 만들고, 1층 안방 창문의 틀이 내려앉아 벽을 헐어 다시 보수하는 공사였습니다. 2층 화장실 창문을 내는 일은 금세 끝이 났지만, 1층 안방 창틀을 보수하는 공사는 녹록치 않았습니다. 창틀을 고치기 위해 외벽을 확인해보니 벽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 나무 기둥이 썩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주일간 천천히 썩은 부분은 긁어내고 튼튼한 쇠로 기둥과 창틀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50년은 끄떡없을 것이라고 수리해 주시는 마을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라도 알고 고친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웃 교회(정확히 말하자면 이웃 교회 옆집에 사는) 고양이 ‘띨띨이’가 사람들이 자꾸 와서 들여다보니까 싫어서 갓 태어난 새끼들을 숨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은 아이가 물었습니다. “고양이는 손도 없는데 어떻게 옮겨요?” 이웃교회 사모님이 “짐승들은 손이 없으니까 입으로 물어서 옮겨”하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작은 아이는 “띨띨이는 짐승이 아니잖아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띨띨이는...가축이지. 가축”하고 사모님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작은 아이의 눈에는 띨띨이가 사랑스러운 고양이이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자신을 두렵게 하는 짐승과는 완전히 차별화 된 동물이었던 것입니다. 띨띨이가 짐승이 아니라 가축이라는 말에 작은 아이의 혼란스러움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모님의 ‘가축’이라는 어색한 대답이 재미있어서 내내 웃음이 났습니다.
이웃 사모님이 출산한 띨띨이에게 참치캔을 준 이야기는 이전 편지에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띨띨이가 자신을 보살펴주는 것이 고마워서 주일 아침에 선물을 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고 했습니다. 고양이 띨띨이의 선물이 무엇인지 작은 아이가 얼마나 궁금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선물은 바로 쥐였습니다. 이웃 사모님의 말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고마우면 꼭 선물을 가져다주는데, 주로 자신이 잡은 쥐나 새 등을 집 앞에 두고 간다고 합니다. 이웃 사모님의 딸인 하경(가명)이가 저희 집 두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설명을 해 줍니다. “아침에 엄마가 야채 껍질을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데 갖다 버렸는데 글쎄 젖소(또 다른 동네 고양이의 이름)가 거기서 밥을 먹다가 야채 껍질을 뒤집어 쓴거야. 그래서 엄마가 미안해서 참치를 줬어”
저는 동네 고양이와 개에게 밥을 준적도 없고 이름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경이네는 온 동네 고양이와 개의 이름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집 작은 아이도 기억하는 다른 몇마리의 강아지와 고양이의 이름들은 저는 들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게는 그냥 ‘도둑고양이’인데 하경이네는 ‘띨띨이’, ‘젖소’등의 이름을 붙여주고 돌보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아도 그렇게 많을 수가 없습니다. 동네 고양이나 강아지가 오면 언제라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교회 사모님이 계시니 그 동네 고양이와 강아지는 참 복도 많습니다. 밥을 주면 자꾸 올까봐 아예 음식물 쓰레기도 그릇에 담아주지 않는 저와는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동네 버려진 강아지나 고양이를 무수히 데려다가 키웠었습니다. 어머니가 싫어해도 아랑곳 않고 고양이를 이불 속에 넣고 팔베개를 해주고 함께 잤습니다. 고양이가 아픈 것 같으면 이불을 덮어주고는 우유를 먹이고 잘 돌봐줘야 한다고 바쁜 어머니께 신신당부를 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고양이는 작은 대변을 한 덩이 누고는 싸늘하게 식어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고양이를 뒷산에 묻어주고는 나무를 꽂아두고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강아지나 고양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강아지는 집에 남았지만 고양이는 집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강아지는 충직하고 고양이는 독립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웃의 다른 한 집은 덩치가 저만한 골든리트리버를 집 밖에서 키우다가, 문 앞에서 키우다가, 이제는 아예 집 안에서 함께 숙식을 합니다. 이 골든리트리버는 한 때 그저 집 밖에서 방치되어 있던 지저분하고 우울한 시골 개였으나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토란’이라는 이름도 얻고 집 안까지 진출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털이 많이 빠져도 마음 좋은 두 주인은 먹이고 입히고 산책시키고 하루에 10번씩 청소기로 집 안에 날아다니는 털을 청소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토란이는 저희 집 두 아이가 놀러가서 사과를 주면 아이들의 손이 다치지 않도록 그 큰 입으로 조심히 잘 받아서 서걱서걱 씹어 먹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다 똑같은 동네 고양이인데 다른 누군가에는 모두 서로 다른 독특한 고양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모두 짐승으로 분류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짐승이 아닌 마음을 나누는 가족이 됩니다. 그 차이는 아마도 관심과 사랑에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느냐,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대상은 달라집니다. 사실 고양이나 강아지라는 대상이 스스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다름을 만들어 냅니다. 사랑받으면 사랑스러워지는 것이 만물의 이치입니다.
띨띨이와 토란이에게서 배웁니다. 제게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 주시는 이를 거절한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오늘 하루 저도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사랑스러워져가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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