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사는 세상과 남자가 사는 세상은 다르다.
며칠 전 강남역 부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살인은 어둡고 으슥한 곳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범행 장소인 노래방 주변 화장실의 노래방도 술을 판매하지 않고 흡연이 금지된, 청소년들도 이용 가능한 개방적 구조의 노래방이었다. 범행이 일어난 곳 역시 어두운 곳이 아니라 불이 환하게 켜진 밝은 곳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이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남녀공용화장실을 이용한 20대 ‘여성’이었다. 피의자는 신학대학을 중퇴한 30대 남성, 화장실에 들어오는 여성을 상대로 하겠다던 피의자는 1시간 반을 화장실에서 기다렸다가 마침내 들어온 피해 여성을 살해했다. 기다리는 동안 들어왔던 남성들은 당연히 건드리지 않았다. 피의자가 밝힌 살해 동기는 다음과 같았다.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곧바로 강남역은 추모의 행렬로 줄을 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방문해 애도의 메시지를 글로 남겼다. “살女주세요 넌 살아男았잖아”, “오늘도 우리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다음 생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 이 어처구니없는 살해 앞에서 실로 많은 사람들이 사태의 본질로 여성혐오를 말하고 있는 중이다. 피해자가 살해당한 이유가 단지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주로 남자들의 입을 통해서다.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지 말라든지, 모든 남자가 나쁜 것은 아니니 무리한 일반화는 하지 말라든지, 이 사건의 본질은 여성혐오가 아니라 약자혐오로 정정해야 한다든지, 이번 일을 빌미로 남자와 여자의 편을 가르지 말라든지... 남자들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척이나 단순하게도 그것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자와 남자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평소에도 좋아하는 글을 자주 남기는 한 극작가(@antipoint)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너, 밤길 조심해라-!’ 남자들의 싸움에서 상대를 위협할 때 쓰는 말. 나는 너를 해칠것이다, 네가 생각지도 못한 아무때라도. 이 말은 듣는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땅의 여자들은 혼자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평생 그 말을 듣고산다.” 이 짧은 글은 사태의 본질을 쉽고도 간결하게 알려주는 글이었다. 남자들은 밤늦게 홀로 산책을 해도, 야간에 홀로 택시를 타도, 늦은 밤 긴 골목길을 걸어 귀가해도, 야심한 밤 집에서 홀로 잠들어도, 전혀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모든 상황들이 여자들에게는 끔찍한 공포의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캐나다의 작가이자 여성주의자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신을 비웃을까 두려워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한다.” 잠재적 피해자인 여자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는 사회는 여전히 야만적인 사회다. 문명의 사회라면 잠재적 가해자들에 대한 경고와 대비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주는 사회일 것이다. 즉, 우리는 여자들에게 조심하라고, 남자인 내가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사회가 아니라, 남자 없이도 여자들이 안심하고 밤길을 걸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바울의 이 말은 철저한 차별을 전제로 한 말이었다. 이방인을 차별한 유대인, 노예를 차별한 자유인, 여자를 차별한 남자.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말은 당연하게도 모든 차별의 붕괴를 의미했다. 차별은 그것이 의식될 때에야 비로소 개선의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니 가장 오래되고, 가장 견고한 차별인 성차별에 있어 특히나 남성들은 다음의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여자가 사는 세상과 남자가 사는 세상은 다르다는 사실을.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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