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지난 토요일 두 아이와 함께 이웃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모님이 교회 앞에 핀 목련꽃이며 개복숭아 꽃을 따서 건조시켜 만든 차를 마시며 유기농 차를 만들어서 팔면 선교비가 되지 않겠느냐며 깔깔댔습니다. 말이 쉽지 자그마한 개복숭아 꽃을 따서 차로 마시도록 말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저 시골생활의 소박한 즐거움을 맛보는 정도로 만족해야지요. 개복숭아가 열리면 제가 설탕을 들고 갈테니 함께 따서 효소를 담그자고 약속하고, 겨울 내내 땅에 묻어놓은 김치독을 언제 헐어낼 수 있을까 이야기 해 봅니다. 여유로운 토요일 오후의 하염없는 대화와 웃음이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시골마을에 좋은 친구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제가 이웃 사모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웃교회 남매와 저희 집 남매가 함께 놀았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막 출산을 한 동네 고양이 ‘띨띨이’의 거처에 가 보았습니다. 4마리의 아기고양이들이 눈도 뜨지 못하고 옹기종기 모여서 몸을 부비고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출산을 한 띨띨이를 위해서 참치캔 하나를 따서 밥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혈통은 귀한 고양이라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동네‘띨띨이’에 불과한 어미 고양이는 사랑해주는 사람을 알아보고는 얼른 달려와서 참치를 먹었습니다.
한참을 집에서 놀다가 이웃 목사님의 권유로 거진에 있는 해맞이 공원에 가 보았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거진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길을 걸으면서 민들레 홀씨도 불어보고, 사진도 찍고 가져간 과자도 먹어가며 산책을 즐겼습니다. 서울이었으면 주말에 사람이 많았을텐데 이곳 고성에는 바쁜 농사철이라 그런지 저희 일행 외에는 사람을 찾아 보기 어려웠습니다.
해맞이봉에 도착해 보니 ‘거진의 바다정원 흰섬’이라는 곳이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잔돌이 많아 ‘잔철’로 불리다가 이 중 제일 큰 바위가 갈매기 배설물로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지금의 ‘백섬’이 돠었다는 설명이 적혀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너도 나도 바위가 하얗게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난간 위에 두 발을 올리고 백섬을 바라보았습니다.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배설물을 정말 백섬에 떨어뜨렸는지 확인하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지만 거리 때문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안내판에는 이런 일화도 적혀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인근 마을에 살던 일본인들이 패전 소식을 미리 듣고 안전한 탈출을 위해 이 곳 주민들을 몰살시키려 하였으나, 이를 눈치 챈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위기를 모면하였다.” 잔돌이 많아 생업을 하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곳이 위기의 순간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도 그러하거니와 자연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하찮고 쓸모없어 보이던 것이 어느 순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즐거운 토요일이 지나고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희가 진부령으로 이사를 온 이래 빠짐없이 나와서 피아노 반주를 해 주던 군인청년의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쉬운 마음에 이제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그 청년의 제대와 앞날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달라고 교인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교회 권사님도 다음 주에는 본인이 반찬을 세 가지 만들어 올 것이니 교회에서는 고기반찬을 준비해달라고 당부하고 가셨습니다. 그 군인 청년과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 예배드렸던 마을의 고등학생은 오후 예배가 끝나고도 서너 시간을 교회에 남아 군인청년과 담소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마치 유학생활을 하면서 학기마다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수시로 제대를 하고 떠나가는 청년과 새로이 입대한 청년들을 만납니다. 이별은 늘 아쉽습니다.
이런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난 주일은 즐거운 어린이 주일이었습니다. 5살부터 9살까지 4명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서서 저희 교회에서 준비한 티셔츠와 서울의 교회에서 지원받은 과자꾸러미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입에 함박웃음 꽃이 피었습니다. 작년에 처음 진부령에서 예배를 드릴 때만해도 예배당을 뛰어다니고 굴러다니던 아이들이 올해는 많이 자라 조용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제는 설교를 하고 있는 목사님의 뒤를 돌아 뛰어다니지 않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큼 큰 기쁨도 없습니다.
이렇게 저는 지나간 주말을 보냈습니다. 시골생활의 즐거움은 마음의 여유와 소박함입니다. 아이들이 서울교회에 있을 때는 매주 선생님들이 준비해 주시는 주일 간식을 먹었지만 이곳에서는 군인 청년들이 가져오는 피엑스 과자와 음료수로 만족합니다. 작은 티셔츠 한 장에 즐거워하며 당장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어봅니다. 저 역시 매일 똑같은 이웃을 만나도 그 이웃이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제게 이 이웃을 두지 않으셨다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하고 마음을 곱고 순하게 다집니다.
일상이 곧 축복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이 있다는 것, 아침이 되면 일터로 향하고, 저녁이 되면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자녀들이 자라나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 다투고 화해할 친구가 있고 마음을 나눌 이웃이 있다는 것,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매일 자녀를 돌보고 일을 하고 주말을 보내고 예배를 드리고 심방을 하는 아주 평범한 일상, 이것이 저에게 축복입니다.
오늘 하루 여느 때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움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여전함 속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바라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봅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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