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섬 속의 섬인 강화도 석모도에 사는 이준우 목사를 통해 필리핀 선교여행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은 적이 있다. 세 명의 청년들과 동행했다는데, 듣자하니 ‘비전 트립’이란 의미의 선교(宣敎)가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선교의 선은 ‘맞선을 보다’라는 의미의 선(選)이고, 선교의 교는 앞으로 깊이 사귄다는 뜻에서 교(交)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선교다운 선교를 했더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농촌 총각이 장가들기 어려운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것은 30년 전에도 농촌교회의 목회자에게 아주 심각한 목회과제였다. 꿈 많은 아가씨가 누군들 시골로 시집 와서 시부모님 모시고, 힘든 노동일을 하며 평생을 보내려고 할까? 게다가 시골 남자들은 늘 밖에서 노동일을 하니 외모도 검고, 자신을 가꿀 새도 없다. 그러다보니 세월이 곡절 없이 흘러 대개 노총각이 되어서야 신부감을 찾게 되는 것이다.
석모감리교회는 필리핀 선교사를 통해 필리핀교회 안에서 신부감을 찾기로 하였다. 안팎으로 결혼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당사자들도 모두 찬성하였다고 한다. 국내에 많은 국제결혼단체가 있지만 지나치게 결혼을 상품화하는 경향이 있고, 사람 사이의 문제를 서류 몇 장으로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있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맞선 선교여행은 대성공이었다고 들었다.
강화도, 게다가 배를 타고 더 들어 가야하는 석모도에서 농촌 총각이 대한민국 처녀에게 장가드는 일은 바늘귀 확률이다. 그래서 ‘겨우’ 30대 중반의 세 총각은 일찌감치 시선을 바꾸기로 했다고 하였다. 더 이상 불가능한 국내 결혼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고,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바람을 잡아준 담임목사는 노총각들이 쑥스럽지 않게 필리핀까지 동행하였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당장 필리핀 셈법으로 계산하여 나이 두 살씩 할인까지 받고 보니 총각들의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필리핀교회는 한국 농촌교회의 국제결혼프로젝트에 성의를 보여주었다. 지방회 차원에서 광고를 하고, 스무 살을 겨우 넘긴 처녀들 여섯 명을 추천해주었다. 국제결혼을 원하는 한국인들은 대개 40대가 넘는 고령인데, 강화도령 세 명은 이제 30대 중반이니 더없이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대부분 20대 초에 혼인을 하니 그 연령대를 넘긴 처녀를 찾는 일은 아주 어렵다고 했다.
두 차례 맞선 끝에 드디어 세 총각 모두 자기 ‘짝’을 만나는 일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각각 여성의 가정을 방문해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정식으로 사귀기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메일을 주고받으며 봄 새싹처럼 사랑을 키운다는 소식이다. 모내기가 끝내면 다시 2차 신사유람단으로 필리핀을 다녀올 계획이라고도 하였다. 듣기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아마 총각 집안들에서도 한숨을 돌렸을 것이다.
농촌총각 뿐이 아니다. 요즘 도시 총각, 도시 처녀들도 결혼 상대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결혼 상품화는 국제 혼인보다 국내 혼인이 더욱 심각하다. 삼포(三抛)세대로 비유하듯, 취업과 결혼, 육아 등 젊은이들이 넘어야 할 산들은 첩첩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티브이 프로그램 ‘짝’이 결국 폐지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을까? 천부적인 ‘짚신의 짝’이 아닌 인위적인 ‘상품의 짝’을 맺으려고 하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1인 가구가 어느새 500만 가구를 훌쩍 넘어섰다.
한글성경 창세기를 보면 히브리어 ‘에젤’을 ‘짝’으로 번역하고 있다. 아내와 남편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서로 거든다, 서로 돕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돕는 배필’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거들 짝’으로, 새 번역 성경은 ‘알맞은 짝’으로 옮겼다.
부부는 ‘돕는 관계’(에젤)로 만났고, 단짝 친구로 인생의 순례를 한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최고의 친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즐거운 일은 하나님께서 나의 ‘도움’, 내 ‘짝’이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시 121:1). 하물며 농촌총각들의 결혼 프로젝트를 어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5월, 어김없이 가정의 달이 돌아왔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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