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면 길이 된다
한 탈북자가 방송에 나와 하던 말이 생각난다. 넓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며 ‘남한이 참 일 많이 했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도로 뿐 아니라 달리는 차창 밖으로 지나는 푸른 산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가 그리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산은 언제부턴가 녹음이 짙은 아름다운 산이 되어 있다. 내 어렸을 때만 해도 대부분 민둥산이었다. 땔감으로 낙엽을 긁어다 사용했다. 나무를 베어 아궁이에 지펴 밥을 짓고 아랫목을 덥혔다.
이후 석탄이나 전기를 연료로 사용하게 되면서 산은 제 모습을 갖춰 갔다. 또한 정부 주도의 나무 심기나 입산 금지 정책도 한몫을 차지했다. 단숨에 이뤄지지 않았지만 결국 이뤄졌다. 이는 작은 일들이 쌓여 낸 결과다.
프랑스엔 누구든 이름만 들으면 알 아름다운 곳이 있다. 프로방스다.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동부의 아름다운 목가적 농촌 마을이다. 그런데 이 곳이 처음부터 이리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어느 날 한 여행자가 아주 황폐한 지역을 방문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무가 없는 절망의 땅이었다. 그때 한 양치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30마리의 양과 함께 그곳에 살고 있었다.
양치기는 이 황폐한 곳에 도토리를 열심히 심고 있었다. 하루에 100개씩 도토리를 심었다. 벌써 그렇게 한 지 3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로부터 5년 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여행자가 군인이 돼 다시 방문했을 때 놀랍게도 아름다운 숲으로 변해 있었다.
엘제아르 부피에가 그동안 심어 놓은 도토리나무, 밤나무, 단풍나무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환상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꾸준히 나무를 심은 한 사람에 의해 오늘날 누구든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프로방스라는 아름다운 지방이 탄생한 것이다.
고인이 된 어느 목사님께서 “우리가 바로 살면 세상은 바뀝니다”라며 성도의 신앙적 삶을 교훈한 적이 있다. 맞다. 작지만 우리가 좋은 길을 내며 가면 언젠가 그 길이 너도나도 가는 대로가 될 수 있다. 소설가 이외수는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서 길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나 있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어떤 길도 처음으로 간 사람이 없는 길은 없다. 우리 산의 녹화나 프로방스 마을의 탄생 이야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길을 처음 들어선 사람이 있었다. 결국 그 길은 모든 이가 걷는 대로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일까. 이미 뚫려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길은 예수께서 가신 길이다. 자신이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앞서 그 길을 가셨다. 그 길을 충실히 가는 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길은 실은 인간으로서는 처음 가는 길이다. 그래서 그 길을 간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야 한다. 결국 대로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그가 ‘거룩’이라는 길을 내는 사람이다. 우리 힘들어도 그 길을 내며 가야 하지 않겠는가.
김학현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