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와 에덴의 숲
도시에서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보고도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항상 곁에 있어 그냥 당연시 하는 것들입니다. 때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일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길거리 가로수들입니다.
옛날 ‘오리나무’를 오리마다 심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가로수는 거리를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가로수가 도시 미관이나 도심 녹지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 듯합니다. 봄이 되어 거리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는 벚꽃들이나 살랑살랑 거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벚 꽃잎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을 보려고 산과 들을 향하는 발걸음을 이내 멈추게 합니다.
물론 이보다 더 큰 역할은 도심의 공기정화와 소음방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로수로 자동차 매연에 잘 견디는 것을 심고, 짧은 기간 동안 좁은 땅에서 빨리 자라는 나무들을 심습니다. 그간 많이 심겨진 것은 ‘플라타너스’입니다. 청주의 5km나 되는 거리와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상젤리제 거리에 심겨진 플라타너스는 제 기억 속 깊이 새겨져 있는 가로수입니다. 이 나무는 ‘양버즘’나무라고도 불리는데, 나무껍질이 마치 영양이 부족하여 얼굴에 피던 버즘과 닮았기 때문입니ㅁ다. 여름에는 큰 잎이 그늘을 주고 겨울에는 달려있는 방울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공해물질 흡착 등 공기정화 효과나 소음방지가 타 수종에 비해 탁월한대, 요즘엔 아토피 물질이 나오고 벌레가 많이 생긴다 하여 베어지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기억 속에 떠오르는 가로수로는 벚나무나 은행나무, 단풍나무, 튤립나무, 이팝나무 등이 있습니다. 특정 지역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들도 있는데, 청주의 플라타너스나 창원과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충북 영동군의 감나무과 충주의 사과가 그렇습니다.
이들 나무들은 한 번 뿌리내린 자리에서 오랜 동안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그들이 있어 도시는 다소나마 쾌적해집니다. 간혹 나뭇잎 스치는 소리나 바람결에 실려 오는 나무향기를 느끼게 되면 순간이나마 편안함에 젖습니다.
오늘 하루 분주한 발걸음을 늦추어 걷다가 길 가 가로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앞에 잠시라도 멈추어 서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빈약한 도시의 가로수 숲이지만 그것이 스트레스에 찌든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것입니다. 비록 작은 숲일지라도 그 숲과 우리가 연결될 때 에덴의 숲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좋았던’ 하나님의 에덴의 숲 가까이로 다가서 하나님과 나, 피조물이 하나 됨을 어렴풋하게 맛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에덴의 숲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비록 어렴풋하게 느끼게 할지라도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무지하여 그냥 지나치게 될 뿐입니다. 오늘 하루 가로수 길 걷다가 한 그루 앞에 서서 인사를 나누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다 동네 숲길로 접어들면 좀 더 오래 머물러 봐도 좋겠지요. 겨울눈 뚫고 나온 새순이 여리게 내는 소리를 듣게 되면 조금 더 멈추어 서서 사귀다가 자주자주 찾아봐도 좋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찾듯이 말입니다.
유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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