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일주일이 어찌나 빠른지 주일이 금세 돌아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토요일과 출근을 하는 평일이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마을 어르신들의 일주일은 더 바쁩니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피망 농사를 준비하는 손길들이 바쁩니다. 하우스를 손보고 비닐을 씌우며, 피망 씨앗을 심고 가식(떡잎이 올라온 피망을 작은 분으로 옮겨 심는 일)을 합니다. 마을 주민들끼리 가정별로 돌아가며 품앗이를 하느라고 날마다 이 가정 저 가정으로 옮겨 다니며 가식을 돕습니다.
지금부터 여름이 지나 피망을 수확하기까지 성도들은 바쁜 농사 때문에 예배에 잘 참석하지 못합니다. 정성들여 기르는 동안에도 바쁘지만 피망이 다 자라 수확을 시작하면 월요일 가락시장에 피망을 출하하기 위해서 주일에 가장 바쁘게 수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품앗이 가식도 마찬가지여서 온 동네가 일정을 잡아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공동 작업을 하는 것이어서 주일에 교인들만 빠져 나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마을에 관심이 없다거나, 자기 일만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사과농사를 짓는 부부도 지난 주일에는 사람을 고용해서 사과나무를 돌보느라 아내분만 교회에 나오실 수 있었습니다. 오시는 길에 친정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신 올해의 첫 곰취를 여러 상자 교회로 가지고 오셔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작년에 처음 진부령에 와서 곰취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먹는 것인지를 몰라서 이곳저곳으로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후 속회 때 성도님들의 집에 가니 입맛을 살려주는 곰취 장아찌가 있는 것을 보고 뒤늦게 곰취를 구하려 해 보았으나 곰취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채취가 가능해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인들이 모두 돌아간 후 저는 교회에 남아있는 곰취를 씻었습니다. 간장과 청고추, 매실청을 넣어 끓인 후 곰취 위에 부었습니다. 간장물을 뒤집어 쓴 아직은 뜨거운 싱싱한 곰취를 하나 집어 입에 넣어보니 쌉싸름한 맛이 일품입니다. 이제 여름이 오면 깻잎과 샐러리도 장아찌를 담아야겠습니다. 초록 나물이 넘치는 농사의 계절이 다가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돕니다.
장로님께서 “교회 뒤 산을 한번만 돌아도 한 끼 먹을 쌈나물들을 뜯을 수 있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아 나물들이 보이지 않지만 앞마당의 머위는 살짝 꽃대를 내밀었습니다. 작년에 머위 외에는 아는 나물이 없는 저는 보고도 어떤 나물이 먹는 것인지 몰라 뜯을 수 없지만, 나물을 채취하는 전문가들은 냉이와 쑥 외에도 고사리, 참곰취, 참나물 등 뭔가 많이 찾아서 뜯어갔습니다. 올해는 저도 고사리를 따서 먹어보려고 합니다.
작년에 시골 주부답게 한 것을 자랑해 보자면, 참뽕나무 잎을 채취해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월계수 잎 대신 음식의 잡냄새를 제거할 때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올해에도 참뽕나무 잎을 채취하고 뽕나무 가지도 조금 채취해 보려고 합니다. 작년에 야심차게 도토리도 채취를 해 보았지만, 물에 담가 벌레를 제거하고 그늘에 말리는 사이 그만 도토리가 다 썩어 버렸습니다. 올해는 도토리 채취도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성공한다면 천연 도토리묵도 만들어 먹어 볼 수 있겠지요?
이처럼 어설픈 시골 아줌마에게는 단순한 채취도 어려울진대, 공들여 길러서 채취해야 하는 농부들의 농사는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요. 이제 오랜 시간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지을 농부들의 땀과 수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같이 일어나 농작물을 돌보고 수확하는 농부들의 노고가 있기에 우리의 식탁에 먹거리들이 올라옵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의 몸, 우리 자신이 됩니다. 먹거리가 재배되는 과정과 조리되는 과정 모두 중요합니다. 단순하게 재배되고 조리된 것, 가까운 곳에서 재배되어 이동시간이 짧은 것, 유전자를 조작하여 대단위로 제배한 것보다 한 가족농이 재배한 적당한 양의 먹거리가 더 건강한 먹거리입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4%로 OECD 34개국 중 32위로 최하위입니다. 특히 옥수수나 콩 등의 곡물류의 수입의존도는 훨씬 더 높은데, 식용기름과 과자를 포함한 모든 가공식품, 약품 등의 재료로 사용되는 이 곡물류가 대부분 GMO농작물 생산지에서 수입된다는 사실은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현재 형성된 시장 안에서 개인의 선택으로 먹거리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먹거리 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새로운 상상을 해야 합니다.
혹시 홍순관씨의 ‘쌀 한톨의 무게’라는 노래를 들어보셨습니까?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스몄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농사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먹거리가 파릇파릇 자라나고 있습니다. 싱싱한 봄나물 한 접시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그것을 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땀 흘려 기른 농부에게 감사하며,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나물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꼭꼭 씹어 먹으며,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기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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