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셔를 애도하며

겐셔(Hans-Dietrich Genscher)가 죽었다. 독일의 영원한 외무장관 겐셔가 89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다. 그는 어느 독일 언론의 표현과 같이 독일 통일의 설계자였다. 1974년부터 1992년까지 서독과 통일 독일의 외무장관을 지낸 그는 독일이 통일될 수 있도록 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겐셔는 1927년 구 동독지역이었던 작센안할트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거기서 자라 동독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약 3년간 법정의 인턴과정을 겪었다. 1952년 그는 동독을 탈출하여 서독으로 이주하였고, 서독에서도 법정 인턴을 마치고 검사까지 하였다. 서독에서 그는 정당에 참여를 했고, 1965년에는 연방하원의원을 하였다. 그리고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내부장관을 하고, 1974년부터 1992년까지는 외부장관을 역임했다.

그의 이력이 독특한 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그가 동독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서독에서 검사를 하고, 정치인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그는 정권이 3번 바뀌는 동안 장관을 연속으로 역임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부장관은 동방정책으로 유명한 사회민주당(SPD)의 빌리 브란트 수상 밑에서 한 것이고, 외부장관도 1974년부터 1982년까지 사회민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 밑에서 했다. 그러나 1982년부터 1992년까지는 기독민주당(CDU)의 통일총리 헬무트 콜과 함께 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 두 당에 속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민주당(FDP Freie Demokratische Partei) 소속이었다. 자유민주당은 소수 정당이다. 의원내각제를 기반으로 하는 독일에서 자유민주당은 소수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캐스팅보드를 쥐었다. 어느 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사회민주당과 기독민주당은 자유민주당을 얻어 정권을 잡고는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겐셔는 부수상으로, 그리고 내부장관과 외무장관을 지내며 23년을 요직에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정적들은 그를 철새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그와 자유민주당의 존재는 독일이 민주적으로 존재하는데 절대적이었다. 그들은 타협했고, 누구의 독주가 아니라 함께 함으로 하나의 독일을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겐셔는 무엇보다 통일의 과정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서구의 우방국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며, 동시에 동구의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신뢰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는 독일의 통일이 주변 국가들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는데 주력했다. 독일은 평화를 원하며, 통일이 거대한 국가의 탄생으로, 그리고 주변국에 영향을 끼치는 국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이들 국가들이 독일의 통일을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더 나아가 그는 유럽국가들이 연합(EU)을 이루는데 밑받침이 되었다. 그래서 독일은 동서독의 통일뿐만 아니라 유럽의 통일이라는 큰 비전으로 주변국가들을 이끌어 낸 것이다. 결국 그의 노력은 성공했고 독일은 재통일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이 통일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에 대한 분홍빛 희망이 피어올랐다. 10년, 20년, 아니 당장이라도 통일은 이루어질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는 전쟁의 위험이 감돌고, 북한은 핵무기로 무장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강경해졌다. 요즘 같으면 통일이 요원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만 앞선다. 겐셔의 죽음이 전해진 오늘 나는 이 땅에도 그와 같은 지혜자가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조성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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