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켤레 운동화
독일 베를린에서 손님이 와서 봄볕 창가에 앉아 한가로이 점심을 먹었다. 커피를 마시면서는 치과 치료를 위해 방문한 짧은 일정 동안 그가 해야 할 일을 들었다. 몇 년 만에 왔지만 마침 4월에 온 것도 뜻이 있다면서, 이번엔 세월호 현장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였다. 일요일에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오가는 셔틀 버스를 타겠다고 했으니, 지금쯤 이미 마음은 검은 바다를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오는 토요일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준비한 영화 ‘망각과 기억’을 볼 것이다. 영화제작을 후원하는 텀블벅 참여자들에게 우선 제공한 ‘탱큐 시사회’는 사실 늦깎이 영화배우이기도 한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독일로 떠나기 이틀 전인 4월 11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세월호 304인 기도회에도 참여할 마음이 있다. 어느새 세월호 참사는 2주기를 맞는다. 세월은 너무 빨리 흐르고, 조사는 너무 늦어 이만저만 조바심만 태우고 있다.
내게도 팽목항은 두 번 방문한 경험 때문에 낯설지 않다. 처음은 늦가을이었는데 티브 화면에서 보던 것과 달리 너무나 조용한 풍경이 오히려 두렵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아픔의 기억을 너무 일찍 일상의 서랍 속에 넣어 둔 채, 산 사람이라도 제대로 살아야 한다면서 분주히 제 길을 다니고 있었다. 당연하면서도 그런 일상조차 모질게 느껴지던 깊은 가을이었다.
사고 초기에는 종교를 막론하고 교단마다 몇 달씩 팽목항에 기도처를 두고 운영하였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흐를 줄은 몰랐을 것이다. 대통령이 공공연히 약속하였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해수부장관도 현장을 꼬박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든, 정치든 시늉에 그칠 뿐 희생자 가족의 마음을 얻지도,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도 못하였다.
진심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그곳을 방문했던 강진 살던 한 선배가 기도실에서 썼다면서 시 한편을 보내준 일이 있다. 밤새 기도하던 중에 잠든 것이 부끄러워, 깨자마자 부랴부랴 옮긴 글이라고 했다.
“팽목항 등대 밑에서 눈이 떠진 순간 시계는 4시 47분을 지나고 있는데 새들이 운다/ 조는 나를 나무라기라도 하듯 ‘시’음으로 운다/ 얼른 나와라 얼른 나와라/ 또 다른 새가 운다 이번에는 높은 ‘도’음으로 .. 새들아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 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의 식탁을 준비하신다. 내일은 더 멀리 날아라.”
편지에 공감하여 선배와 둘이 만나 팽목항에 다녀왔고, 그해 겨울에는 강진감리교회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혼자 걸어갔다. 폭설로 쌓인 종탑 아래로 알록달록 성탄 등이 비취던 때였다. 그리고 눈을 밟으며 사흘 만에 도착한 곳이 진도 팽목항이었다. 18번 국도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리 많던 차량도, 사람도, 울음소리도 뚝 끊기고, 나무마다 매달린 노란 리본도 빛이 바랬다.
이제 2주년이 성큼 다가오면서 다시 팽목항을 떠올린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시작이란 생각이 든다. 교회는 모두가 떠나버린 그 지점에서, 남들이 모두 외면하는 이 시점에서 이제 다시 세월호를 소리 높이 불러야 하지 않을까? 호들갑을 떨던 언론이, 중무장한 대책본부가, 불타던 사람들의 관심사가 재가 되어 버린 여기, 비로소 팽목항과 세월호를 불러내야 한다. 적어도 진심이 있었다면 남들이 다 나서던 그 때가 아니라, 모두가 물러선 지금 해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 온 영화배우는 올 가을 부산영화제 때 다시 올 지도 모르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가 주연 세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출연한 영화가 비록 저예산 독립영화지만 시의적절한 문제의식 때문에 초청받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의 생각과 행동을 대역하는 배우의 입장이 되고 나니,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마음에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영화배우는 55년 째 독일 시민으로 살고 있다. 듣자니 세월호 참사 2년이 길고 먼 세월이라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느껴진다. 여전히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는 달마다 한인교민들과 독일시민들이 모여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며 행위 예술을 펼친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기억에서 광장으로 불러들이고, 과거에서 현실로 끌어낸다.
광장에 나란히 둔 운동화 304켤레는 얼마나 충격적이었던가? 그 광장은 서울 광화문 광장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을 이어주었고, 맹골 수로 검은 바다와 우리 시대의 목마름을 이어 주었다. 지금은 묵은 기억력을 변명할 때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하며, 또 기도해 봐도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갈 길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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