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엑스 마키나
이 글을 쓰고 있는 10일 현재, 구글에서 만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을 두 번이나 이겼습니다. 충격입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놓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세돌의 우세를 점쳤습니다. 1997년에 체스 게임용 딥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긴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2500년의 역사를 가진 바둑의 경우는 체스보다 10의 100제곱이나 많은 경우의 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사람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는 알파고의 진화속도를 가볍게 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알파고가 채택한 학습방안이 더욱 주목을 받습니다. 알파고의 학습방안은 경우의 수를 대입하는 대신 사람의 전략을 학습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로기사들의 기보(棋譜)를 놓고 특정 상황에서 프로기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 패턴을 학습한 후에 컴퓨터가 스스로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방식입니다. 지금도 알파고는 이런 방식으로 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진화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올 해 88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엑스 마키나’(Ex Machina)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SF영화를 즐겨 보는 영화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수작입니다. 전 세계 인터넷 검색엔진의 96%를 장악한 블루룩의 천재 CEO 네이든이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자신의 연구소에서 은밀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 연구의 완성을 위해 칼렙이란 프로그래머가 선발되어 연구소에 도착을 합니다. 그의 역할은 네이든이 진행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를 테스트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공지능 에이바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로봇입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과 여성의 감성을 갖고 있는 로봇입니다. 과연 에이바가 느끼고 생각하는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프로그래밍된 인공적인 것인지를 칼렙은 면밀히 테스트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진짜 테스트를 당하는 것이 칼렙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이든과 칼렙 사이에 우월함과 열등감이라는 인간적인 갈등이 생기고, 이를 간파한 인공지능 에이바는 여성적인 매력을 이용해서 칼렙을 유혹합니다.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는 연구소를 빠져나가는 매우 인간적인 자유를 갈망합니다. 영화는 에이바가 칼렙의 남성적인 감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다는 상상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습니다. 1950년대에 ‘튜링 테스트’를 만든 엘렌 튜링은 컴퓨터의 반응이 인간의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이는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까지 기계가 맥락을 갖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맥락과 의도를 인간성, 인간다움의 본질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한된 바둑의 영역이긴 하지만 알파고가 인간이 갖는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고 인간을 이겼습니다. <엑스 마키나>에서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가 의도를 가지고 두 남성 네이든과 칼렙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는 게 멀지 않은 미래의 현실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성큼 다가온 것입니다.
알파고의 맥락읽기와 승리의 강한 의도는 광범위한 프로기사들의 기보(棋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영화 ‘엑스 마키나’는 에이바의 가공할 인공지능의 바탕이 인터넷 검색엔진을 통해 집적된 어마어마한 정보의 양이라고 합니다. 현실적인 설득력이 있습니다. 알파고를 개발한 회사가 ‘검색엔진 구글’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완벽한 인공지능의 개발은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수 도 있다는 스티브 호킹의 말은 빈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인공지능, 다시 한 번 진지한 논의와 믿음의 성찰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두 번째 짐승은 첫 번째 짐승의 형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그 짐승의 형상이 말할 수 있게 하고, 그 짐승에게 예배하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죽임을 당하게 했습니다.”(계13:15)
이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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