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지팡이
내가 소중히 간직한 물건 중에 나무지팡이가 하나있다. 평생 독일에서 광부 노릇을 한 교우 한분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태백 석탄박물관을 세울 때에 그가 평소에 입던 작업복과 광산화가 대표전시 될 만큼, 그는 전형적인 광부 출신이었다. 남들이 모두 3년 광산근무를 마쳤을 때에도 그는 계속 광부로 일했다.
지팡이는 머리 부분에 독일광산 심벌이 조각된 것이다. 손잡이를 장식한 작은 쇳덩이는 차고, 묵직하게 느껴진다. 아직 지팡이를 쓸 나이가 아니어서, 가만히 한 구석에 모셔두었다. 당장은 장식용처럼 보이지만, 곧 의지할 나이가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하라고 일깨워 주는 듯하다.
성경에서 지팡이는 하나님께만 의지한다는 심벌과 같다. 특히 목자의 지팡이는 양떼를 몰아가는 지휘용이고, 종종 들짐승을 물리치기 위해 휘두르기도 하며, 움직이는 문 또는 점치는 일로도 쓰였다. 끝이 둥글게 구부러진 갈구리 모양이어서 지팡이를 이용해 팔의 길이를 늘여 곁길로 빠지는 양을 붙잡기도 하고, 양이 바위 틈 사이에 빠졌을 때에 건져낼 수도 있다.
지팡이는 교회 전통에서 순례자를 상징한다. 스페인의 성 야고보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심벌은 지팡이와 호리박이다. 나그네 신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팡이는 고달픈 삶을 느끼게 한다. 출애굽의 밤, 사람들은 유월 저녁을 먹을 때에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었다. 무엇보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은총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역사적으로 지팡이는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통치자의 권위와 의전용 명예를 상징한 것을 ‘규’와 ‘홀’이라 불렀다. 권위, 지휘, 돌봄, 자비, 심판 등을 상징적으로 함축한 것이다.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오직 유다에게만 지팡이 축복을 하였는데(창 49:10), 결국 넷째 아들 유다가 조상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
교회의 전통에서 사도의 지팡이 역시 교권의 계승자에게 이어진다. 가톨릭 교황의 지팡이(Baculus)는 그 머리 부분을 수난 당하신 예수 고상(苦像)으로 장식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인이라는 뜻이다. 일반 주교의 지팡이는 윗부분이 원형으로 구부러져 있는데 목자의 지팡이를 본 딴 것을 사용한다.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으로 받아들여졌다.
교회의 역사에는 유명한 지팡이들이 존재한다. 성 베네딕도는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만든 베네딕도 수도규칙은 수도회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며 오늘까지 모범으로 전해지는데, 특히 베네딕도가 붙잡고 있는 지팡이는 교사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지팡이 십자가’는 성 안스가르의 심벌이다. 지팡이 머리 부분을 둥글게 구부려 그 안에 그리스 형 십자가를 담은 것이다. 그는 스웨덴, 유틀란트, 슐레스비히 등 당시 세상의 끝인 유럽의 최북단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서, ‘북부의 사도’(Apostel des Nordens) 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새봄이 오니 누구든 길 떠날 채비를 한다. 겨우내 움츠렀던 몸이 기지개를 켜고, 한껏 까치발을 들고 멀리 희망을 응시한다. 공부하는 아이에게 ‘주마가편’처럼 따라 다니는 간섭의 지팡이는 늘 부담스럽고, 곧 총선을 치룰 예비 후보자들은 누구나 황금지팡이에 욕심을 부릴 것이다. 저마다 요술지팡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가시나무로도 좋은 지팡이를 만들 수 있다’는 속담은 아마 다른 곳에서 지팡이를 찾기보다 그 자신더러 지팡이의 삶을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먼 길을 의식하며, 그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일수록 무엇보다 겸손히 주님의 지팡이를 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양식과 배낭, 전대의 돈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팡이’임을 강조하셨다(막 6:8). 그 지팡이가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송병구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