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란 어디에서 올까?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가족에 대한 잔잔한 사색을 전해주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이 개봉되어 상영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바닷마을 다이어리>, 역시 삶에 대한 잔잔한 사색을 전해주는 이 영화의 원작은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다. 외간 여자와 바람을 피워 어린 세 딸을 집에 남겨두고 떠나버린 아버지, 그리고 잠시 후 재혼하겠다며 역시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 성인이 된 세 자매는 부모가 떠난 집에서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한 세 자매는 처음으로 배다른 여동생 스즈를 만나게 된다. 중학생인 스즈의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 병사했고 아버지는 최근 아이가 둘 딸린 여인과 재혼하여 스즈는 이들과 함께 살고 있던 터였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며 맏언니는 홀로 된 스즈에게 갑작스레 함께 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러자 스즈는 즉시 함께 살겠다고 대답한다. 자기 어머니 때문에 파탄 난 집안의 생면부지 이복언니들인데도 스즈의 결심은 신속하고 간결했다. 대체 이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예수를 알기 전의 바울은 학벌, 신분, 혈통, 인맥 등에 있어 소위 지금과 같은 갑을사회라면 슈퍼갑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리스도 계시를 경험한 후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후 11:23-27) 대체 이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용기의 비밀은 아마도 바울 사도의 다음 고백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빌 3:8)
모든 용기는 잃을 것이 없는 마음으로부터 온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였다. 그리고 반대로 모든 비겁은 그것이 아무리 알량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고자하는 마음, 즉 잃을 것이 있는 마음으로부터 온다. 지금의 재물, 지금의 명예, 지금의 인맥, 지금의 신분, 지금의 자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 바로 이것이 사람을 비겁하게 만드는 것들이 아니던가. 잃을 것이 있는 마음은 또한 언제나 주저하기 마련이다. 영화에서 스즈는 생면부지의 언니들과 살 것은 그렇게 빨리 결정했으면서도 고등학교 진학을 앞에 두고는 고민하고 주저하며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언니에게 누군가 말해준다. 그때의 스즈는 선택을 위한 시간도 조건도 없어 고민의 여지도 없었던 것이라고. 처음의 스즈는 더 이상 가진 것이 없었고, 그로 인해 잃을 것도 없었다. 그러니 고민의 여지도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잃을 것이 없는 마음은 결정 또한 신속하고 간결하다. 지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면, 나는 여전히 잃을 것이 두려운 것이다. 여전히 잃을 것이 있는 것이다. 바울의 잃어버린 마음을 배울 수는 없을까? 아마도 비결은 모든 것을 잃었다는 바울의 말 앞에 놓인 다음의 고백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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