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십자가
지인이 책을 준비하며 추천서를 부탁했다. ‘십자가’가 주제이다. 믿음의 유일한 근거가 십자가라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은 십자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구원의 유일한 길은 십자가라고,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든 기준은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표현대로 정말 원초적 복음을 담고 있다.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책을 읽으면서 첫 느낌은 생소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참 오랜만에 듣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책의 형태로 보는 것은 더욱 오래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날 것 그대로의 복음을 우리 앞에 내어놓는 그런 이야기나 저서는 요즘 그리 흔치 않다. 이쁘고 귀여운, 아니면 우아하고 아름다운 십자가 이야기나, 우리 삶의 채색을 입고 특이하고 별난 십자가는 많이 보았어도 이렇게 예수의 피 묻은 십자가는 정말 오랜만이기에 생소하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아직 출간되기 전이지만 그 책에 이런 말이 있다. ‘바울에게 “당신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주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한결같은 고백입니다.’ 이 구절을 읽는데 무엇이 가슴을 친다. 예수 믿는 내가, 십자가를 전해야할 목사가 당연히 받아들여야할 이야기인데 오늘 이것이 내 가슴을 친다. 무엇인가를 들킨 도둑놈 마냥, 네가 도둑이지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 마냥, 이 구절이 내 가슴을 친다. “그래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 묻은 십자가가 내 삶의 기준이고, 내 삶의 모든 것이어야 하는데 참 잊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목사로 산다는 것은 참 신나는 일이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 나라의 일, 옳고 바른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그리 살면 사람들이 잘 한다고 하니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힘도 들고, 상처도 받고, 주변에 같은 뜻 품은 사람들 월급 못주어 죄책감 얻고 하는 일은 일상으로 가지고 가지만, 그래도 주의 일 한다는 자부심과 만족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십자가에 부닥친 것은 주의 일만 열심으로 하고, 그 복음의 십자가, 그 피 묻은 십자가를 하루하루 꺼내보지 못했다는 자각이다.
요즘 목사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때이다. 딸을 죽이고 그 시신을 유기한 목사 때문이다. 물론 다른 문제 있는 목사들도 많이 있었지만 이만하지는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기에 자괴심에 빠진다. 거기에 나도 그처럼 독일 유학도 했고, 교수도 하는 처지이다 보니까 괜히 주변에서 이야기할 때 마다 나랑 비교하는가 싶어서 뜨끔뜨끔하다. 이런저런 상황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예수의 복음은 능력이 있는가를 다시 묻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십자가로 주님이 나를 일깨우시는 것 같다. 모든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주님의 은혜인 것 같다. 십자가 외에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시던 바울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나도, 한국교회도 순수함으로 돌아갈 때인 것 같다.
조성돈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