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단상
명절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신지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고 즐거우시기를 바랍니다. 주일예배 후 귀성을 해야 하는 저희 가족은 대설특보가 내린 진부령에서 오붓한 주말을 보냈습니다. 쌓인 눈을 치우며 눈싸움도 하고 이글루도 만들었습니다. 장로님 내외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속초로 나가보니 미시령에도 눈이 꽤 많이 내렸습니다. 어느 곳이 되었든지 귀성, 귀경길 무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낮에 추위를 잊고 눈 놀이를 한 아이들은 일찍이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가 작은 어항 속의 구피들에게 밥을 주다보니 문득 구피들이 하염없이 처량해 보였습니다. 흐르는 물에서 살아야 할 물고기들이 좁은 어항 속에서 일평생을 보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심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구피들은 서울에서 작은아이의 친구가 준 치어를 봉지에 담아와 기른 것입니다. 저희 집으로 이사 온 치어들이 자라서 또 알을 낳고 자라 현재 11마리가 되었습니다.
구피들에게 자연스러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흐르는 물을 따라 돌아다니며 스스로 먹이를 찾고 모험을 감수하는 삶일 것입니다. 저는 구피들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먹이를 잘 먹고 있는지, 물이 더러워지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정도입니다. 구피들을 저와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감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면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가끔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구피를 사랑한다면 구피가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 구피가 원하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것이 구피의 본성이기 때문에 나의 기준으로 “어떻게 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어항을 네가 떠날 수 있어?”라고 따져 물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구피가 구피답게 살 수 있도록 떠나보내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의 삶을 제 기준으로 정렬시킬 수는 없습니다. 만일 상대가 제가 좋아하는 모습만을 보이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일 제가 상대의 어두움을 인정할 수 없다면, 저는 제가 바라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일 뿐 그 사람을 독특한 한 개체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상대에게 강요한다면 기실 그것은 상대에게 투사된 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을 할 때는 상대의 장점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환상이 온 몸과 마음을 덮어 단점마저 장점으로 보이거나 아예 상대의 부족한 점은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상대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섭섭함과 실망감이 생깁니다. 때로는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맞는가 싶다가 왜 제 마음을 몰라주나 싶어 화가 나기도 합니다. 마치 맡겨놓은 권리를 찾듯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따져 묻습니다. 그렇게 사랑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의무와 구속으로 변해가기 쉽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칼릴지브란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는 시에는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의 잔만을 채우기 위해 인생을 모두 소진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거나 부정하는 슬픈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하며, 상대가 자유롭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처럼 아름다운 사랑도 없을 것입니다.
가까울수록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관계 사이에 여백을 두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만, 반갑게 만난 가족들 중 혹 내 마음에 쏙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인정하는 넉넉함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허물을 들추고 화를 내는 일은 명분만 상대를 위한 충고일 뿐,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충고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면 우리는 모두 행복할 것입니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인정하는 여유와 우리의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명절 연휴 내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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