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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06 01:54
   
이런 섬김을 바란다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40  


이런 섬김을 바란다.

 

 한국교회는 이 사회에서 많은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호단체들은 모두 기독교 단체로 시작했거나,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세워진 단체들이다. 월드비전, 기아대책본부, 컴페션, 해비타트, 굿네이버스 등이 모두 교회를 배경으로 시작했거나 그 도움으로 성장한 단체들이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의 통계에 보면 장기기증을 한 사람들을 종교별로 보면 개신교인이 69.5%이고 천주교인은 8.2%, 불교인은 7.9%, 무종교인이 13.8%라고 한다. 즉 개신교인의 숫자가 압도적이다. 인구센서스 기준으로 개신교인의 비율이 18.3%인데 장기기증을 한 사람들 중에는 개신교인이 70%에 육박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 2001년에서 2003년 사이 대북인도지원금에서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51%이다. 즉 민간차원에서 북한을 돕는 일에 반 이상을 개신교에서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는 다 합쳐서 2.9%를 지원하는데 그쳤다. 1996년에서 2002년 사이에 이루어진 해외인도지원금에서는 개신교가 64.9%를 감당했다. 약 65%를 한국개신교회가 감당했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는 4.9%를 지원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통계들을 보면 한국개신교회는 이 사회에서 섬김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회의 평가는 냉정하다. 안티기독교가 나타날 정도로 적대적이다. 도대체 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율법학자의 입장에서 섬김을 행했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 의도를 의심하고, 섬김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 대해서, 우리 교인들에 대해서 의심을 갖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 나오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행위라는 것이다. 선한 의도가 아니라 교인 만들려는 의도에서 그런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우리가 그들을 이웃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는 것이고, 그러한 본심이 사람들에 의해서 파악되어졌다는 것이다.


 섬김의 관점을 바꾸어야한다. 섬김에 앞서 먼저 이웃이 되어야한다. 사귐이 섬김에 앞서야한다. 코이노니아가 없는 디아코니아는 이웃을 섬김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릴 뿐이다. 진정한 이웃,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섬김의 기본자세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교회는 중요한 섬김의 기본단위이다. 특히 작은교회는 이러한 섬김의 중요한 자리이다. 즉 각 교회가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 다수를 상대로 하는 섬김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 정확히 한 이름을 가진 그 사람, OOO이라고 하는 한 아이를 돕는 것이다. 동네에 속한 다수의 소년소년가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한 인격체와 인격적인 사귐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얼굴이 있는 복지, 인간적인 복지를 교회가 섬김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국가는 항상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을 공무원이 실행해 나간다. 그러나 한 개인, 한 가정은 그러한 정책의 카테고리 안에서 다 이해되고, 세워질 수는 없다. 각각의 개인과 가정은 그 사정과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들을 고려할 수 없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교회는 다르다. 그들을 돌아볼 수 있다. 우리 동네의 그 아이라면 우리가 사귀고 섬길 수 있다. 이것이 교회가 할 수 있는 섬김이다. 여기서 한 인격의 스토리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사진으로 증명되는 섬김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는 섬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가 이랬으면 좋겠다. 섬김을 행하되, 먼저 사귐을 이루고,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이웃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진심은 어느 때인가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놓치지 말고 정말 내 주변에 강도 만난 자들의 이웃이 되고자,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갔으면 좋겠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바로 저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우리가,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성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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