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의미
오늘도 진부령에는 함박눈이 나립니다. 지난 며칠 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마을 안의 알프스 스키장이 개장을 했고, 옆 집 성도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아버지가 고국에서 임종을 맞으실 수 있도록 어려운 수속을 거쳐 베트남으로 떠났습니다. 이제 곧 흘리분교를 떠나게 될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의 송년회가 있었고, 성탄절을 전후하여 큰 아이는 2박 3일 캠프를 떠났으며, 온 마을이 하나 되는 마을 대동제가 있었습니다. 또 군인교회와 연합으로 드린 성탄 예배에는 6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섬김의 손길로 준비된 점심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바쁘고 분주한 시간이 지나고 조용히 앉아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봅니다. 앞산의 야윈 나무들은 지난 계절의 화려함을 다 벗어버렸습니다. 잎도 꽃도 열매도 모두 여의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겨울눈을 맞으며 외부로 뻗어나가던 모든 생명의 에너지를 안으로 모아들이고 있습니다. 분명 저 나무들은 이 계절을 지혜롭게 보내고 봄이 오면 다시 생기가 충천해 질 것입니다. 자연도 이처럼 안식의 지혜를 가지고 있으니, 고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면 쉼을 갖는 것, 분주한 평일을 보내고 주일에는 예배와 함께 안식하는 것, 익히고 생산하는데 열정을 다 한 젊음의 때를 지나면 삶을 돌아보고 영혼의 지혜를 얻는 노년을 맞이하는 것, 모두 삶을 지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난 주 중에 하루는 큰 아이가 무척 화가 났습니다. 남편에게 전해들은 화가 난 일련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큰 아이가 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만화 주인공 흉내를 내면서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놀았습니다. 신이 난 작은 아이는 커다란 박스를 머리 위에 얹고는 무언가 주문을 외우며 박스를 아래로 내렸고, 공교롭게도 그 박스는 큰 아이의 얼굴과 안경을 치고 말았습니다. 대노한 큰 아이는 작은 아이를 때렸고 작은 아이와 큰 아이가 동시에 큰 소리로 울며 서로의 잘못을 탓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남편이 상황을 중재하려 하였으나 큰 아이는 화를 삭이지 못했고 “아빠는 안경도 안 끼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도 못하면서!”하고 문을 쾅 닫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왔을 때 큰 아이는 제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 말했습니다. “내가 용서 안 해준다고 했는데도 아빠랑 00이가 자꾸 따라다니면서 사과하잖아요. 나는 화 풀기 싫은데...아빠는 내가 안경 건드리는 거 얼마나 싫어하는지, 또 안경 또 부셔질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해요. 그렇잖아요. 아빠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빠는 안경을 한 번도 안 껴봤는데.”하고 하소연을 합니다. 큰 아이의 생각에는 지신의 처지를 아는 사람은 오랫동안 안경을 낀 엄마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아무리 사랑해도 대신 아파 줄 수는 없고, 대신 자라 줄 수도 없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은 몸을 입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이의 아픔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겠습니까? “아빠는 모른다.”고 하소연 한 큰 아이의 생각은 엄밀히 말해 틀린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안경을 껴 온 저 역시 큰 아이의 당시 그 마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그 아픔을 짐작하고 안타까워 할 따름입니다.
이런 작은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저희 집의 큰 아이와 같이 때로는 원망하고 때로는 외로워하고 때로는 어긋난 길로 향했습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가진 한계와 아픔을 그대로 겪어내신 예수님. 낮아지고 낮아져서 미움 받고 배신당하고 십자가에 달리는 수치와 육신의 고통을 겪으며 속옷마저 제비뽑아 빼앗기신 가난한 예수님. “지향아 내가 너를 안다.”라고 말씀하셔도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도록 이 땅을 살다 가신 예수님입니다. 성탄절 아침 “내가 너를 알고 너의 아픔을 이해하니 너는 이처럼 사랑하기를 그치지도, 포기하지도 말고 살아라.”라고 제게 다시금 당부의 말씀을 하셔도 “그게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라고 반문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픈 세상을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핍박받는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배신당하여 가슴을 치는 사람, 미움 받아 갈 곳이 없는 사람, 어느 곳 하나 머리 둘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보면 예수님의 삶을 떠올려 보아야겠습니다. 성공과 화려함, 누군가를 짓밟고 일어서는 삶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제 마음 속의 여의어야 할 것은 과감히 여의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하루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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