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지 않도록
지난 주간에 원로 목사님과 송년 점심식사를 했다. 이 어른이 평생 잘 하신 일 중에 하나가 ‘밥을 대접하는 일’이었다. 현직에 계실 때든 은퇴 후에도 대접 받기보다 대접하는 일을 참 정성스레 하셨다. 그러면서 “앞으로 여든이 되면 이젠 자네들이 사게. 그때까지는 나도 여력이 있으니까” 하시더라. 그래서 “아닙니다. 75세까지만 하시죠. 내년부터는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 멋쩍게 답해 들렸다.
식사 후 커피숍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아무리 사람이 오래 살게 되었다고 해도 나이 팔십이 되면 누구든 언제든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더라고 하신다. 그동안 여든 고비를 넘자마자 홀연히 떠나가던 주위 어른들 몇몇을 헤아리면서 공감하였다. 요즘 대세 유행가인 ‘백세인생’은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 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고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며칠 전에 옛 목회지인 독일 복흠에서 긴급한 연락이 왔다. 어느 집사님이 암수술 후 몇 일만에 폐렴으로 고생을 하던 중 지금 중환자실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방이 응급실 같은 우리 사회에서는 자주 듣는 뉴스이지만, 독일 속 작은 한인공동체에서는 놀라운 빅 이슈일 것이다. 게다가 집사님은 파독광부 중 1970년대 말에 온 막내 세대여서 더 많은 걱정과 우려를 낳았다.
젊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선배님들 다 보내드린 후에 갈 테니 걱정 말라”고 장담했던 집사님이기에 놀라움이 클 것이란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은 ‘태어 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돌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며 되받아 쳤지만, 막상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남편 곁을 지키는 아내 집사님은 “하루하루 호흡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하루하루’가 씨름이다.
이미 6년 전에 고인이 된 선배 목사님이 호흡이 점점 기울 즈음에 한 통의 편지를 내게 보내주었다. 그는 청주에서 교회를 개척한 후 마지막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암수술 후 더 이상 생명을 유예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기록을 정리한 책을 발간했는데, 평소 꼼꼼히 기록하고, 성찰하던 그이기에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을 것이다.
출판국에서 작업을 서둘렀고, 책도 나오기 전에 교단 기관지에서 서평으로 다루었다. 프린트 형태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쓴 나는 선배의 숨쉬기조차 힘든 가슴에 명예로운 훈장을 달아 드린 셈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편지를 받은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지막 생일을 집에서 보낼 수 있도록 병원에서 1박 2일 휴가를 주었고, 그 때 집에 와서 컴퓨터로 작성한 편지였다고 한다. 완벽한 습관대로 편지에는 그의 편지를 공증하는 철인을 찍었다.
“고마웠다고 인사도 하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나게 될까 걱정했어요. 제대로 된 인사를 하려다가 그나마 한 마디도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싶어 이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진작 부지런을 떨어 식사라도 제대로 한 번 접대를 했어야 하는 건데... 부디 목사님의 미래에 주님의 크신 은총을 빌 뿐입니다.” 날자와 이름 사이에 이런 글귀가 가슴을 적셨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밤임을 알고 있을 때.”
누구든 평생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살지만, 떠날 때는 ‘밥 한 그릇’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게 마련이다. 선배 목사님이 축복하신 내 미래는 어떨지, 지금 내 나이에 먼저 떠나간 선배의 얼굴이 겹쳐 한도 없고 끝도 없을 축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스웨덴 루터교회가 만든 ‘믿음의 진주들’이란 기도 프로그램이 있다. 예수님은 ‘진주장사 비유’(마 13:45-46)를 통해 천국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시지 않았던가? 원형으로 이어진 18개의 진주들은 한 사람의 하루와 일생을 위한 간구처럼 느껴진다. 가장 큰 진주인 ‘하나님(황금색)’을 중심으로 끈끈이 연결된 ‘나(진주색)-세례(흰색)-광야(황토색)-자기 비움(파란색)-사랑(빨강색)-비밀(진주색)-밤(검정색)-부활(흰색)’이란 크고 작은 18개의 진주들은 나 영혼과 대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나씩 돌려가면서 의미를 새기던 중 유난히 검은색 진주 ‘밤’과 마주하니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밤은 단지 하루의 어둠이 아닌, 인생의 깊은 밤이고 역사의 종말이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자신의 마침표를 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것 역시 ‘일용할 기도’가 되어야겠다는 데 이르렀다.
어느새 2015년도 한해가 저문다. 깊은 밤은 반드시 새벽과 가깝고, 믿는 이들의 죽음은 분명히 부활과 가깝다. 너무 늦었다고 아쉬워하지 않도록 서둘러 ‘밥 한 그릇’ 나누고, 소중한 ‘사랑 한 모금’ 베풀 일이다. 무엇보다 귀가 어두운 부모님께 너무 늦지 않게 ‘전화 한 통화’ 걸어야겠다. 너무 늦지 않도록..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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