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의 지혜
주말에 두 아이를 데리고 고성왕곡마을에서 열리는 전통 민속체험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왕곡마을은 지난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데리고 2박 3일간의 캠프를 하느라 다녀간 곳이기도 합니다. 6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당시 한고개집이라는 북방식 초가집 안채와 바깥채를 빌려 들살이를 하는 마음으로 캠프를 왔었습니다. 아이들은 낮에는 넓은 마당에서 게임과 물놀이를 하고, 밤이면 장기자랑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심함이 주는 창의성을 발휘해 볼 생각으로 아주 심심하게 준비한 무계획 여름캠프는 날아드는 벌레들과 함께 참 즐거웠습니다.
그 와중에 장난기가 많은 남자 아이들이 100년 된 민속집의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다 뚫어버리고, 심지어 나무에 경칩을 박아서 사용하는 바깥채의 문 한 짝을 뜯어버리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습니다. 100년 가옥의 문이 떡하니 떨어진 모습을 보고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지만, 다행히 민속마을의 보수는 고성군에서 모두 한다며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뭘 걱정하느냐” 하시던 마을 어르신의 말씀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오늘 캠프 기간 동안에 아이들의 식사를 책임져 주시던 마을 아주머니를 찾아갔습니다. 민속체험 축제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저와 아이들의 인사를 반갑게 받으셨습니다. 진부령으로 이사를 왔다는 저의 말에 “작년에 우리 동네 와보니 너무 좋아서 고성으로 이사를 왔느냐”며 한가할 때 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민속체험에서 두 아이와 제가 한 체험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트렉터 마차를 탄 것과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판 것이었습니다. 트랙터 뒤에 수레처럼 앉는 자리를 만들어서 20-30여명의 사람을 태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이 바로 트렉터 마차였는데 앉는 자리가 들썩이거나 마차 앞쪽이 하늘로 들릴 때는 어찌나 아찔한지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습니다. 큰 아이는 재미있다며 웃음이 만발하고, 작은 아이는 너무 무섭다며 얼굴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트랙터가 마차가 되다니 정말 신통방통한 일이었습니다.
인근에 사는 한 가족과 함께 부스를 미리 신청해서 준비한 벼룩시장에서는 작은 아이의 장난감과 큰 아이의 소소한 물건들이 판매대에 올랐습니다. 벼룩시장에 처음 참여해보는 것이라 준비는 부족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물건을 애지중지하는 작은 아이가 벼룩시장에 장난감을 내놓기로 결심한 것은 자신이 갖고 싶은 새로운 장난감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전날 밤에 심혈을 기울여 선별한 장난감을 가방에 담아 아침에 결연한 의지로 벼룩시장에 도착한 작은아이는, 못내 섭섭한 표정으로 장난감을 하나씩 만져 보더니 “엄마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어요.”하면서 하나 둘 다시 가방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세 개의 장난감이 다시 가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장난감을 팔아 15,000원을 벌었습니다. 쑥스러운지 적극적으로 장난감을 팔지는 못했지만, 장난감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이 지나가면 쓱 앞쪽으로 장난감을 내밀고는 거래가 성사되면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침나절 저는 지나간 어떤 일이 제대로 처리가 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내가 그걸 했던가?’ ‘안했으면 모레 그걸 어떻게 처리하지?’ 하며 머릿속으로 지나간 실수를 곱씹고 다가올 내일의 대처에 대해 생각하느라 마음이 한 자리에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장난감을 갖기 위해서 쓰던 장난감을 판매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흔들리는 작은 아이를 보면서 그것이 바로 현재 저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를 곱씹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옹글게 살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처럼 옛 것을 떠나보내지 않고서는 오늘이 새 날이 될 수 없습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한데, 한 날의 괴로움을 여러 날의 고뇌로 채운다면 새 날이 온들 새 날을 살 수가 없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마음속의 낡은 장난감들은 정리해야겠습니다. 버려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순간에 다시 불쑥 튀어나와 마음을 괴롭히는 변명과 불평, 지나온 시절의 후회들을 자꾸 다시 주섬주섬 주워 담지 말아야겠습니다. 지나간 날 비록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늘 하루가 지나간 날들의 그림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내 앞에 실재하는 유일한 시간은 오늘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이 소중한 시간을 새 날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날마다 새 날이라면,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면 얼마나 설레고 행복하겠습니까? 주께서 주신 이 한 날, 저도 여러분도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홍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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