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앙고백 경제
외국인이 독일에 취직하면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첫째는 월급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그 많은 월급이 세금과 준조세 성격의 다양한 공제금을 빼고 나면 별로 남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는 것이다. 보통 혼자 사는 봉급자의 경우 이러한 세금과 공제금을 빼고 나면 원래의 월급에서 절반정도가 겨우 남는 정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많은 세금과 준조세를 별 불만 없이 내고 있다. 과연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독일이라는 나라는 명확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회국가(Sozialstaat)라는 것이다. 이 사회국가라는 개념은 복지국가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동일시할 수는 없다. 사회국가를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시장경제주의에 대해서 긍정을 하면서 그 시장에 대한 사회적 동의에 의한 국가적 개입과 간섭을 강조하는 국가체제이다.
일반 자본주의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는 시장경제주의는 효율과 경쟁으로 그 체제를 이루어간다. 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더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그 체제는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고 사람들은 잘 살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경쟁과 효율이 너무 강조되다 보니 사람들이 거기에 치여서 인간성을 말살 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비인간적인 행위들이고, 더 나아가서는 범죄행위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번에 롯데사태를 보면서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롯데는 그 어느 기업보다 우리와 가까운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껌이나 과자류, 놀이공원 등도 있고, 어른들에게서는 슈퍼마켓에 쇼핑몰과 백화점, 그리고 호텔 등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언제나 접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다. 어떻게 보면 롯데라는 기업이 그렇게 성장하는 데는 우리 국민들의, 코 묻은 어린이까지 포함해서, 작은 돈들이 모여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기업이 90세가 넘은 아버지와 두 아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국민들이 끼어들 틈새는 없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국가는 사회시장경제라는 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효율과 경쟁을 인정하면서 이에 틀을 지어주는 것이다. 국가가 강력하게 개입을 하면서 위와 같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를 기업에만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즉 경제의 가치를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여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교회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경제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의 도구가 된다. 결과는 많은 세금을 걷어, 많이 버는 사람들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혜택을 돌리는 것이다.
도입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독일은 세금과 준조세가 월급에 50%가 넘는다. 만약 한국에서 이렇게 되었다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독일 국민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왜? 국가가 세금을 걷으면 사회적 약자들에게 보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일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뒤에는 루터교 특유의 국가관이 자리하고 있다. 두 왕국론이라는 신학적 배경도 같이 하고 있다. 독일뿐만 아니라 북구의 스칸디나비아 3국과 핀란드 등이 루터교를 국교로 하는 국가들인데 역시 비슷한 국가체계를 가지고 있다. 신앙이 사회와 국가, 경제에 드러난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회를 보면서 우리의 고백은 어떠한가를 묻게 된다.
조성돈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