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하나님나라
혹시 쌀값을 아십니까? 저도 쌀값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80kg들이 한 가마 산지 평균 가격이 15만 9252원이라고 합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쌀값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었습니다. '소 한 마리에 쌀 몇 가마'하는 식으로 쌀값은 물가를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했구요. 그러나 지금은 쌀의 소비감소가 뚜렷해지고, 시장개방이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더 이상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쌀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식탁에서도 주식의 자리를 빼앗긴 현실은 사람들의 소외현상과 사회의 단절감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소설가 박완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난하고 궁핍했을 때 굶어죽는 사람 없이 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쌀 문화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쌀은 늘려서 나눠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빵은 뚝 잘라주면 잘라준 자리가 남는데 쌀은 얼마든지 늘려 먹을 수가 있습니다. 잡곡을 섞어 먹으면 밥이 불어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물에 말아먹고, 죽을 쑤고 한없이 늘려 먹을 수 있는 게 쌀이라는 것이지요. 없는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나누어 먹었습니다. 들에서 밥을 먹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꼭 불러서 함께 앉아 밥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속의 우리 할머니도 사람들이 찾아오면 반드시 밥 먹고 가라고 붙잡았습니다. 혈육 간에, 이웃 간에 정이 있었습니다.
쌀농사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공동체성이 있습니다. 모낼 때나 추수할 때 혼자서는 지을 수 없는 농사가 쌀농사입니다. 품앗이와 두레가 쌀농사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앙기와 콤바인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치 않습니다. 너른 들판에서 기계를 부리다가 배가 고프면 중국집에 전화해서 자장면을 배달해 먹고 커피를 시켜 먹습니다. 쌀농사는 어느덧 가장 고독한 농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쌀농사에 담겨있는 공동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쌀농사에는 농사를 뛰어넘는 문화가 담겨있습니다. 박완서씨는 그것을 쌀문화라고 합니다. 소박하면서도 나눔의 정이 있는 문화, 그 공동체성이 우리의 내면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쌀문화의 공동체 정서는 하나님나라의 정서와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과 깨어지지 않는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로 건강하게 이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은 항상 공동체성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의 모형인 교회를 철저하게 한 공동체로 디자인하셨습니다.
오늘 사람들의 마음이 닫혀 지고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가 점점 희박해지는 까닭은 공동체성을 파편화하는 먹을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나친 비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광섭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