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우상숭배
“나는 불상을 문화로 본다. 문화재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절을 할 수 있다. 절하는 것, 그건 문화적 행위다. 장례식에 가서도 절할 수 있다. 그건 예의다. 오히려 돈만 좋아하고, 자식한테 쩔쩔매는 것, 가족 이기주의, 이념을 앞세우는 것 그것이 더 큰 진짜 우상숭배라고 생각한다.”
갈릴리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인명진 목사가 숭실대 기독교학과 월례강좌에서 밝힌 자신의 목회철학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불상을 문화로 보고 절을 할 수 있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또 이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오히려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가 더 큰 우상숭배라고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우상숭배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십계명의 제일 첫 번째 계명도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우상만을 우상숭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 자리에 놓고 그것을 숭배하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애굽에서 자신들을 이끌어낸 신이라며 숭배했던 것이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더 교활한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충성과 헌신을 다른 대상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인명진 목사가 진짜 우상숭배라고 말한 것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한국교회의 이런 우상숭배 상황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광범위한 현상입니다. 이런 우상 숭배현상은 복음의 능력을 현저하게 약화시킵니다.
더 심각한 우상숭배는 교회지도자들의 교권욕입니다. 교권을 손에 넣으면 본인에게 명예가 됩니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보상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가요? 온통 지도자 반열에 오르고 싶어하는 목회자들로 넘쳐납니다. 교회에서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더 크고 본원적인 섬김과 희생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덕수교회에서 은퇴한 손인웅목사 이야기는 보존해야 하는 한줄기 빛입니다. 2005년 4월 28일은 서울노회에서 장로교 통합측 부총회장 추대모임을 갖기로 한 날이었답니다. 그 날 새벽, 성경을 펼쳤는데 시편 141편이 화살처럼 머리에 박히며 가슴이 뜨거워졌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말씀을 묵상할수록 아주 정확하게, 아주 강력하게 자신을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는 곧바로 노회 모임 장소로 달려가서 부총회장 후보추대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손인웅 목사는 말합니다. “허욕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지도자들의 우상숭배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교회 안에 가득한 <자기 사랑의 우상숭배>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