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해방이 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으로 추악한 전쟁범죄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입니다. ‘2000년 법정’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몇 십 년 전의 과거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는 광범위한 공감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 된 후 세계의 양심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고, 미국을 위시한 네덜란드, 캐나다, 유럽의회 등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UN 인권위원회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법 위반임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을 비롯한 역대 일본 정권은 자신들이 저지른 추악한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듯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쟁이 종식된 지 70년이 되는 오늘에도 해결되지 못한 현재의 문제가 되고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미국의 입장 때문입니다. 종전 후 형성된 동서 냉전 때문에 전후 일본의 처리를 정치적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관점이 희박했습니다. 둘째, 1965년에 졸속으로 맺어진 한일 협정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한일 협정의 청구권 협상으로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셋째, 1990년 이전의 우리 한국인들의 역사의식 때문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의식과 분노심은 분명 갖고 있었지만 이를 청산해야 할 역사적 이슈로 생각하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를 청산해야 할 역사의 문제로 부각시킨 공헌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일제의 위안부였다는 것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배봉기 할머니입니다. 수모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배봉기 할머니는 오키나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둘째는 마쯔이 야오리 기자입니다. 그는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본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마쯔이 야오리를 일본 우익들은 매우 곤혹스러워했습니다. 세 번째 인물은 윤정옥선생입니다. 윤정옥선생은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를 발족시킨 인물입니다.
윤정옥선생은 1943년 이화여전 1학년 때의 일을 화인과 같이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떠올립니다. 어느 날 학교는 1학년 학생들을 모아놓고 종이에다가 전부 지장을 찍게 했습니다. 정신대 소집장이었습니다. 윤정옥은 다음날로 자퇴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된 이후 다시 이화여전에 재입학을 합니다. 그런데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갔던 남자들은 돌아오는데 ‘처녀공출’로 끌려간 여자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없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곧 정신대 문제는 잊혀졌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이화여대에서 교수생활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1970년대 중반 <분노의 계절>이란 책을 만납니다. 그 책은 그녀의 현실을 종군위안부 세계로 급격히 몰아세웠습니다. 윤정옥은 오키나와와 홋카이도, 태국과 미얀마, 파퓨아뉴기니등을 다니면서 위안부들을 만났습니다. 배봉기할머니와 노수복할머니를 이 때 만났습니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과 자료들은 일본 군국주의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열정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8년 교회여성연합회가 주최한 기생관광문제 국제세미나 자리였습니다. 그녀의 발표에 세미나에 참석했던 여성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해방이 되지 않았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후 개신교회를 중심으로 함께 관심을 갖고 있던 연구자들과 여성운동가들이 모여 1990년 ‘정대협’이 발족됩니다.
이후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를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청산되어야 할 역사, 아직도 살아있는 역사로 되살려냈습니다. 그 눈부신 중간성과가 히로히토 일왕과 일본 정부에 유죄를 선고한 ‘2000년 동경 여성국제법정’입니다. 또한 정대협은 1992년 1월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시작하여 1186차 수요시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일 워싱턴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던 수요시위에 참석한 김복동할머니는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진작 해결했으면 이 늙은이가 여기까지 뭐 하러 왔겠어?” 1186차례나 이어지고 있는 수요시위가 멈추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가 종식될 때에만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우리의 자조적인 생각은 비로소 지워질 것입니다.
이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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