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꿈
‘귀 벌레’(ear-womb)란 말이 있다. 어느 순간 한번 들은 멜로디가 계속 떠올라 종일 흥얼거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귀 벌레가 몸에 달라붙어 노래하듯, 떨쳐 버리려고 해도 쉽지 않다.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다.
쿠바에서 귀 벌레 한 마리가 내 몸에 붙어서 따라왔다. 아바나든, 산타클라라든 어디를 가도 흘러나온 쿠바 노래 때문이다. 처음에는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가 지은 ‘관타나메라’가 붙어 다니더니, 나중에는 국민가수 꼼빠이 세군도가 만든 ‘찬-찬’이 따라다녔다. 이 노래는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통해 잘 알려졌다. 식당의 악사든, 거리의 전파상이든 ‘찬-찬’은 여러 가수의 음색을 타고 날라 다녔다.
세군도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80세에 만든 ‘찬-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작곡한 것이 아닙니다. 꿈꾼 것이지요. 음악에 대한 꿈 말입니다. 때때로 난 멜로디를 머릿속에 담은 채 잠에서 깨어납니다. 어느 날 네 개의 음표를 분명하게 들으며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들은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가사를 붙였습니다”. 국민가요 ‘찬-찬’은 그렇게 태어났다.
많은 사람이 이미 쿠바에 다녀와 흥미로운 여행기를 썼더라. 대부분 음악, 춤, 올드카, 말라카와 프라도와 같은 도시 풍경이야기였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요시다 타로)는 다른 관점이었다. 한 마디로 과도한 소비문화를 누리는 선진문명은 언제까지 그 풍요를 누릴 수 있을까를 묻고, 이제 ‘버블(bubble) 이후 시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시다 타로는 일본의 현실을 자성하면서 그 대안으로 쿠바에서 배워야한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나라를 든다고 하면 어느 나라를 들 수 있을까. 만약 스웨덴과 덴마크를 떠올렸다고 한다면 빗나갔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지구상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나라로 든 것이 쿠바이다”.
무엇이 쿠바를 가리켜 ‘지속가능한 개발의 조건을 충족하는 나라’라고 했을지 의문이 들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혁명 이래, 1961년부터 미국은 독안에 든 쥐처럼 쿠바경제를 봉쇄하였고, 이로 인해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한 쿠바는 30년 동안 소련의 원조경제에 의존하였다. 그러던 중 1990년 소련 해체의 후폭풍으로 경제의 80퍼센트 이상이 붕괴하였다. 더 이상 사탕수수를 사줄 곳이 없고, 석유를 살 돈이 없었다.
쿠바의 선택은 궁핍을 견디고, 내핍을 버텨야 하는 것 외에 달리 여지가 없었다. 쿠바가 자랑하는 의료천국은 지식을 상품화한 대표적 사례이다. 현재 3만 명의 의사를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로 파견하여, 부족한 에너지와 교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유기농업 역시 더 이상 화학농법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대량생산을 포기한 끝에 얻은 대안농법이다. 한때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사탕수수 농사는 오그라들었지만 더 이상 약탈 농업도, 노예노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참고, 견디고, 인내한 끝에 오늘의 쿠바가 대안처럼 존재하는 것은 역설이다. 비록 아바나 구시가는 폭격을 맞은 듯 폐허를 방불케 하고, 거리는 1950년대의 올드 카(Old Car)가 형형색색 누비지만, 속은 여전히 배고프고, 빈티지한 것이 현실이다. 너무나 가난해 의사도, 교사도 가외로 따로 돈벌이를 해야 하는 나라, 그래서 지하경제 규모가 훨씬 크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쿠바의 자신감은 ‘당당한 자유’에서 비롯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는 흑백 혼혈인 물라토는 대단히 건강하고 탄력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들은 카리브 해의 천혜자연을 선물로 받았다. 어디서든 체 게바라의 혁명정신이 나부꼈지만, 그것은 쿠바인들이 즐겨 흔드는 살사리듬처럼 자유로움이 몸에 밴 문화 그 자체가 되었다.
쿠바 여행을 권하는 여행사들은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쿠바 아바나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여행하라”고 권한다. 미국과 수교 이후 달라질 쿠바에 대한 우려를 하는 것이다. 설령 ‘관타나메라’든, ‘찬-찬’이든 소박한 노랫말은 변할 리 없지만, 달러의 권력 앞에서 사람인심은 언제 변심할지 모를 일이다. 쿠바의 오랜 꿈이 어떤 멜로디로 깨어날지, 귀를 열어 둘 이유가 있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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