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을 '갑'되게 하는 힘
기원전 336년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의 왕에 즉위하고, 그리스인들에 의해 총사령관으로 추대되었을 때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만난 적이 있다. 코린토스에서의 일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자다운 당당한 모습으로 디오게네스에게 물었다.
“나는 대왕 알렉산드로스다. 그대는 짐이 두렵지 않은가?”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물었다.
“나는 개(犬)인 디오게네스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선한 자인가. 아니면 악한 자인가?’”
알렉산드로스가 대답했다.
“물론 선한 자이다.”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그러면 누가 선한 자를 두려워하겠는가?”
알렉산드로스가 거지 몰골이지만 당당한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나에게 원하는 소원이 있으면 말해 보라’며 그리스 전역을 굴복시킨 승리자의 위세를 과시했을 때 했다는 디오게네스의 말은 이미 유명하다.
“부디 햇볕을 가리지 말아주시오.”
이때 농락당한 기분이 든 알렉산드로스가 칼을 뽑아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칼집에 칼을 집어넣고 말했다.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디오게네스야 말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비주류였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을’이었다는 말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갑’이고, 디오게네스는 ‘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이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일화 속에서 만나는 디오게네스는 ‘갑’처럼 보이고, 알렉산드로스는 ‘을’처럼 보인다.
원래 디오게네스는 이처럼 세상을 초월한 범상한 철학자가 아니었다. 코린토스의 풍요를 타고난 사람도 아니다. 지금의 터키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도시인 시노페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가 위폐 제조에 관련되며 아테네로 망명하게 되어 코린토스에서 알렉산드로스와 마주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인생에서 맞닥뜨린 큰 실수는 그를 엄혹한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사상가로 만들었다. 실수 후의 삶이 실수 전의 삶을 굴복시켰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실수를 삶의 지표로 삼고 한 단계 진보한 삶으로 이끄는 이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그랬다.
‘세상 참 더럽다’며 자신의 처지를 세상에 화풀이하는 이들이 있다. 있을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그래서는 안 된다. 절대적 권력 앞에 비굴할 필요도 없고, 마냥 딸랑거릴 필요도 없다. 디오게네스가 ‘을’이었지만 ‘갑’처럼 보이는 것은 거지이지만 자존감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자존감을 가진 이들이다. 자만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비굴할 필요도 없다. 예수가 당신의 인생에 있지 않은가. 그것도 중심에.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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