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방황(輪形彷徨)
눈을 가리고 걸을 때 사람은 아무리 똑바로 걷고 싶어도 똑바로 걷지 못한다. 처음 몇 걸음은 가능하겠지만 걸음이 길어지면 어김없이 직선으로부터 간격이 벌어진다. 그런 식으로 점점 간격이 벌어지다 아주 먼 길을 걷게 되면 결국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걷게 되고 만다. 실제로 알프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길을 잃은 조난자는 마을을 찾기 위해 눈 속에서 매일 12시간씩 걸었으며, 그렇게 조난자는 13일을 방황했다. 12시간씩 13일을 걸었다면 도대체 얼마나 멀리까지 걸어갔던 것일까? 그런데 결국 조난자가 구조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조난자가 길을 잃은 장소에서 불과 6킬로미터 반경 안에서 헤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눈을 가리고 걸을 때 큰 원을 그리며 걷게 되는 현상을 한 독일 학자는 ‘링반더룽’(Ringwanderung)이라고 불렀다. 고리 모양의 방황이라는 독일어로 우리말로는 윤형방황(輪形彷徨) 또는 환상방황(環狀彷徨)이라고 한다. 집을 잘 찾아오는 비둘기와 개 역시 눈을 가리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거나 걷는다고 하니 이 현상은 비단 인간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내 딴에는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제자리. 왠지 낯익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단거리 직선으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많이 온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제자리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일까? 어쩌면 지금 나는 윤형방황처럼 눈이 가린 채로 걷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새 세상에 눈이 가려져버려 한 치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빙빙 원만을 그리며 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을 가리고도 윤형방황을 피해 똑바로 걸어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과감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걷는 것이고, 둘째는 30걸음쯤 걷다 잠시 멈추고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출발해 다시 30걸음쯤 걷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어느덧 삶에 허덕이면서 눈이 가린 채 윤형방황 속에 빠져 있는 나를 보게 된다면 이 두 가지 방법을 되새겨보고 삶에 적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인생의 윤형방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먼저 쓸데없이 곁눈질하지 말고, 남들이야 어떻든 내 앞만 바라보고 성큼성큼 걸어가야 한다. 모든 불안과 불행은 남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던가. 부당함과 억울함에 빠져 분노로 나를 망치지 말고, 남의 길을 바라봄 없이 그저 내 길을 성큼성큼 걷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윤형방황을 끝내는 첫 번째 비결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비결은 잠시 걸어가다 십자가 아래 멈추어 서기, 그리고 다시 걷기, 그리고 다시 서기의 반복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언제나 나의 동기를, 나의 목적을,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끊임없이 십자가 아래 멈추어 서서 더러운 나를 털어내고 다시 깨끗해진 새로운 나로 출발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윤형방황을 끝내는 마지막 비결이 아닐까.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시 37:5)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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