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일뿐이라고?
신동식의 새로운 책 ‘빠름에서 바름으로’는 그 이름부터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그 책 가운데 마음에 쿵하고 와 닿았던 구절이 있다. ‘우리시대는 말씀을 천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보다 세상 지혜를 구하는 고린도 교회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잠잠해야 하는데 오히려 떠들고 있습니다. 말씀이 말할 때 아멘하고 순종해야 하는데 그것은 성경일 뿐 이라고 무시합니다.’
한국개신교는 그 어느 교회보다 말씀을 중요시 한다. 성경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의 구절들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적용하려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성경적’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교회에서는 아주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표현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주로 어떤 주장이나 내용을 옳다고 할 때 성경적이라고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서구의 교회에서는 성격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때 이런 표현을 쓰는 것 같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는 성경을 아주 중요한 기준으로 알고 있다.
성경과 관련하여 한국교회의 또 다른 특징은 전통을 뛰어넘어서 성경만을 가치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교회들은 주로 바른 가르침의 기준을 성경과 함께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전통을 들고 있다. 그간 교회가 가르쳐왔고 정의해 왔던 그러한 가르침들이 성경과 함께 중요한 기준이 되어 온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장로교의 경우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같은 것들이 있다. 여기에는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가르침들의 정수들이 담겨있고 그것은 우리 교회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런 전통에 대해 무지하다. 아니 무시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동일하게 적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전통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유교적 가치관이나 행위기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허례허식이나 현대에 지키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무시해왔고, 전통이라는 것 자체를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왔다. 이를 통해 근대화를 급하게 이루긴 했지만 결국 우리는 단절된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보다는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으로 직접 달려갔다. 즉 전통을 통해서 해석되어지고 가르쳐지는 진리가 아니라 우리로부터 직접 성경을 마주하려 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실은 자기의 소견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칠 수 있는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동식은 그의 책에서 우리 가운데 말씀이 천하게 되었다고 한다. 말씀이 말하는데 그건 ‘성경일 뿐’이라고 하며 무시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전통에 앞세우고, 오히려 너무 과하게 성경 본문에만 의지했던 한국교회가 어찌하여 오늘날 이렇게 급격하게 말씀 앞에서 무너졌는지 탄식이 앞서게 된다.
요즘 동성애에 대한 논의가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그건 성경일 뿐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답은 정해놓고 그걸 어떻게 현대사회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현대사회를 보더니 성경이 그게 아니라고 하니 참 이상한 세상이다. 이런 혼란한 세상에서 ‘성경일 뿐’이라는 신동식의 이야기가 가슴을 친다.
조성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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