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오래 전 일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몇 개월 지나지 않은 겨울, 갑자기 큰 숙제가 던져졌습니다. 우리 교회 중고등부에 출석하던 한 여학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소식을 듣고 여학생의 집을 찾았더니 초라한 두 칸짜리 집 안방에는 아버지의 시신이 수습도 안 된 채 이불에 덮여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소식은 알 수도 없었고, 중학교 다니는 여학생과 동생 남매가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습니다. 장례를 치러줄 일가친척도 없었습니다. 시신을 둘둘 말아 경운기에 싣고 나가 묻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경험 없는 젊은 목사에게 참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식을 들은 교인들이 나섰습니다. 흔쾌히 교회에서 장례를 맡아서 치르자고 했습니다. 정성껏 염습을 하고 꽃상여를 만들어 장례를 치렀습니다. 물론 동네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장지도 마련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던 아이들의 얼굴이 따스한 표정으로 변해가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장례식이 인간의 의식 가운데 가장 존엄해야 하는 이유를 실감했지요.
최근에 가슴 뭉클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한 장로님의 장례식이었는데요. 이 분은 세상을 떠나기 1년 4개월 전에 폐암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다만 항암치료를 받으면 6개월은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부인과 함께 간절히 기도를 한 후에 항암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식이요법을 해보겠습니다. 항암 치료 없이 암과 맞서 보겠습니다.”
그는 아내와 이런 결정을 내리고 찾아와서 잘 한 결정이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음성은 담백했지만 듣는 내 마음에는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유구무언... 자신의 살 날, 생명을 담보로 내린 결정 앞에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 그는 암과 즐거운 싸움을 벌여나갔습니다. 언젠가는 부인을 통하여 그에게서 죽음보다 삶에 대한 애착이 절실하게 표현된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습니다.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그런데 그는 때때로 찾아오는 삶에 대한 애착, 그 두려움을 잘 구슬리면서 죽음과 친해져갔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의 갈등은 진실했습니다.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인정을 했습니다. 그럴수록 그의 믿음은 깊어졌고, 삶의 애착을 구슬리면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지요. 의사는 항암 치료를 받아야 6개월을 살 수 있다고 했는데 그는 10개월, 1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폐암 진단 후 10개월이 지날 때부터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저 때문에 할 얘기가 생겼지요? 목사님 이야기거리 만들어드리려고 저도 무척 고생했습니다.”
그렇게 유쾌하게 죽음과 친해졌던 그에게 죽음은 짧고도 급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밤새 그를 짓눌렀고, 새벽 응급실로 옮긴 지 9시간 만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그는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병으로 죽는 사람의 대부분은 연명 치료 때문에 존엄한 죽음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그의 죽음은 존엄한 죽음의 회복을 외치는 큰 나팔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보면 그의 삶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믿음을 따라 살다가 믿음으로 죽었다’(히11:13).
이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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