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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과 8일 사이, 한 아저씨가
5월 5일과 8일 사이는 긴장의 시간이다. 이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긴장이다. 이 때 대부분의 집에서는 선물과 선물 사이를 오가게 된다. 우리 같은 나이에서는 아이들 선물도 챙겨야 하고, 부모님들 선물과 용돈도 챙겨야 한다. 이 때처럼 외식이 잦은 기간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 데리고 식사도 해야 하고, 부모님과도 식사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치이다 보면 이 아름다운 계절 5월이 미워진다.
아쉬운 것은 이런 계절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버지이다. 내 나이 또래의 아버지들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한다. 이들은 자라나는 자녀들 뒷바라지에 부모님 부양까지 큰 부담 가운데 살고 있다. 모든 책임이 이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만한 보람이나 즐거움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더 이상 즐거움은 아니다. 어릴 때 재롱은 사라지고, 짜증과 외면만 남는다. 부모 보는 것이 왜 그렇게 싫은 것인지, 몇 마디 좋다가 금방 마음이 상한다. 거기에 이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얼마인가. 학원이 늘어나면서 챙겨야 하는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아이들 학원비 맞추느라고 뼈 빠지게 일해야 하고, 심지어 아내까지도 일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런 고통과 고난을 아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컴퓨터에 앉아서 게임할 생각만 한다. 들인 돈이 얼마인데,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고 더 성질이다.
아이들 꼴을 보면서 부모님을 바라보면 마음이 짠하다. 나도 어릴 적 저 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릴 때 어머니가 ‘너 같은 자식 낳아서 고생해 봐라’ 그러시더니 그게 그렇게 무서운 말인지 몰랐다. 이제 내가 당해보니 어머니 마음 아프게 한 것, 아버지 고생하는 것 몰라 준 것이 그렇게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마음만 그렇지 잘 해 드리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아이들 뒷바라지 하다가 지쳐서 부모님 잘 해 드릴 재정적 여유가 없다. 나름 한다고 하지만 자식놈들에게 들어가는 것 보다 못하니 죄송할 뿐이다. 부모님을 보면 항상 나는 죄인이다.
5월 5일과 8일 사이 나이 오십이 되어가는 이 아저씨는 그저 죄스럽고 작게만 느껴진다. 열심히 산다고 살지만 아직 부족하고, 아이들이, 아내가, 부모가 좋아할 만한 모습도 아니다. 집에 들어가면 구박이고 핀잔이고, 부모님에게는 항상 죄송하고.
몇 년 전 설악산 오색약수터 근처에 등산을 간 적이 있다. 거기에 보면 속 빈 나무들이 있다. 나무의 속은 벌레에 의해 파 먹혔는지 비었는데, 나무 거죽은 살아 있는 것들이다. 나무를 살리는 수액은 거죽으로 흐리고 있으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다. 그 나무를 보면서 문득 중년의 아저씨들을 보게 되었다. 자식들에게 속을 파 먹혔는데, 사회생활하면서 거죽만 멀쩡한 거다. 그런데 더 올라가니 그 빈 속에 사람들이 기도한다고 돌을 채워놓은 것들이 보였다. 그 나무를 보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빈 속도 안타까운데 그 곳을 돌로 채워놓다니, 무거운 마음을 사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비춰지는 거였다.
5월 5일과 8일 사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한 아저씨의 넋두리였다. 이제 기도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그래야 내일 아침 또 뛰쳐나가지 않겠는가.
조성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