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경영 : 시장규범을 따를 것인가? 사회규범을 따를 것인가?
인사경영 모델의 분류법이 다양할 수 있지만, 시장규범에 기반한 인사경영과 사회규범에 기반한 인사경영으로 분류하는 것도 인사경영의 시사점을 얻는 데 유익하다고 판단된다. 시장규범에 기반한 인사경영은 고용관계를 임금으로 노동을 사는 경제적 교환관계로 보고 그에 맞는 정책이나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시장규범에 기반한 인사경영을 특징짓는 키워드는 단기고용관계, 개인간 경쟁, 금전적 보상에 의한 동기부여 등이다. 반면, 사회규범에 기반한 인사경영은 고용관계를 경제적 거래관계로 보기보다는 상호신뢰와 존중, 호혜성, 연대감, 자발성, 구성원으로서의 당연한 도리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로 엮인 사회적 교환관계로 보고 그에 맞는 인사정책이나 제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회규범에 기반한 인사경영의 키워드는 장기고용관계, 구성원간 협력과 공동체성, 보람과 연대적 책임감에 의한 동기부여 등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인사경영은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큰 변화를 경험했다. 그 변화의 본질은 시장규범에 기반한 인사경영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거래는 시장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 고용관계도 기본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수요-공급의 시장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는 시장규범이 조직 안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지는 않았다. 조직 내에서는 시장원리와는 다른 사회규범 원리에 따라 인사경영이 이루어졌다. 장기고용관계(예, 평생직장), 내부승진원칙, 연공에 기반한 임금인상과 승진, 집단상여금 등이 대표적이 제도이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시장규범이 성과주의라는 이름으로 조직 내 인사경영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고용관계는 점차 단기고용관계로 바뀌었고, 조직 내 많은 자리를 외부노동시장에 개방함에 따라 경력직 수시채용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평가제도는 조직 내 구성원들간 내부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개인의 성과 차이에 따라 개인간 임금격차도 점차 커졌다. 승진에서도 연공보다는 성과와 능력이 중요해졌다.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시장원리의 힘과 인간의 이기적 합리성을 전제해서 보면 기업의 성과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변화노력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그 흐름에 편승함으로써 시장규범 기반 인사경영이 대세를 이루었고, 심지어 정부조차도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들로 하여금 그 대세에 따르도록 다그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시장규범 기반 고용관계와 인사경영 모델이 조직의 성과와 경쟁력을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일까?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시장규범 기반 인사경영 모델이 기초로 하고 있는 인간이해—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 존재라는 가정—가 인간의 일면만을 반영하고 있으며, 시장규범에 기반한 인사경영이 인간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시사해준다. 오히려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규범 기반 인사경영의 실제적 효과가 매우 우수하며, 그 속에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동인이 내재되어 있음을 여러 실증연구들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인사경영의 저력은 첨단 IT기업들의 각축장이라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도 통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스탠포드대학 교수인 Barron & Hannan은 실리콘밸리에서 부침하는 첨단 IT 신생기업들을 대상으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수년간에 걸친 종단(longitudinal)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의 초점은 설립자가 마음 속에 구상하고 있는 고용관계 모델이 해당 기업들의 생존가능성과 기업상장과 같은 핵심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하는 데 있었다. 그들은 설립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다섯 가지 유의미한 인사경영 모델을 도출하였는데, 그 중에서 생존가능성과 기업상장 등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우수한 성과를 보여준 모델이 헌신모델(Commitment model)로 밝혀졌다. 그런데, 이 헌신모델은 금전적 보상을 매개로 인재를 모으고 붙들기보다는 사랑의 공동체(그들은 이를 ‘love’로 기술함)를 기반으로 인재를 유치하고 머물게 한다. 높은 불확실성과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최첨단 IT 신생기업과 가족 같은 사랑의 공동체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인간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게 하는 힘이 돈에 있지 않고, 사랑의 공동체 속에 있음을 확인해준다.
인간의 이기성과 경쟁심을 자극하여 기업의 성과를 높이려는 시장규범 기반 인사경영이 가장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고 그것이 대세를 이룸으로써 많은 경영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요즈음 역발상을 통해 따뜻한 가족공동체와 같은 조직을 구축함으로써 조직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호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양혁승 기독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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