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위로
지난 토요일이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 달 정말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였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대뜸 ‘성돈아, 날 위해 기도해줄래’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친구도 아니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기도해 달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뭔가 일이 있지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무슨 일인데’, ‘성돈아, 내 아들이 죽었어.’
가슴이 철컹 내려앉는다. 무언가,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어떻게 실제적으로 내 귀에 들려야 하는 소리일까. 아들이 죽었단다. 나도 자살예방활동하면서 가족 죽었다고, 자녀가 죽었다고 하는 소리를 꽤나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내 친구가 전화를 해서 내 귀에 대고 하는 말이다. ‘내 아들이 죽었어.’
‘그래 기도하자.’하고는 전화기에 대고 기도를 이어갔다. ‘하나님, 이 아이를 주님의 품에 안아주세요.’ 그리고 어쩐 일인지 물었다. 아이는 심장이 약했다. 얼마 전 서울의 모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친구는 대구에 살고 있었는데,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아이도 건강해져서 학교를 나간다며, 아내에게 휴가를 얻었다고, 서울에 올라와서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한 달도 안 되어 갑자기 죽은 것이다.
세월호 사건 1주년이 겹쳐지며 세월호 부모들이 오버랩 된다. 오열하고, 분노하고, 엎드리고, 싸워보는 그들이 눈에 밟힌다.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청천벽력같이 날아온 사망소식, 물에 잠긴 아이들이 하나씩 인양되어 나타날 때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바다에 갇히어 아직도 못 올라오는 남편을 기다리며 팽목항에서 매일을 보내고 있는 그 부인은 잘 계실까. 함께 기도하겠다고 팽목항까지 좇아온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려나...
고난주간을 맞으며 깊은 묵상에 들어간다. 삶과 죽음의 그 경계는 무엇일까, 더욱 고민하고 있다. 주의 십자가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겹쳐진다. 십자가의 그 고난은 어떤 것인지, 그 의미는 나에게, 또 이 인류에게 어떤 것인지, 다시다시 살피게 된다.
그리고 또 묻는다. 부활이 없다면,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믿는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죽음이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의 삶이 여기서 그치지만 그러나 하나님 품 안에서 안식하며 다시 살 것이란 것을 우리는 믿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실체라고 믿는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 달려갈 길을 다 간 후 그 나라에서 다시 부활할 것을 믿는다. 나는 이 삶이 끝난 후 주님을 꼭 뵈올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하나님에게는 모든 이가 살아있는 자라고 하신다. 죽음 이전의 인간도 하나님이 자녀로 살아있는 자이고, 죽음 이후의 인간도 결국 하나님께는 살아있는 그의 자녀일 뿐이다. 이 사실이 오늘도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부디 이 말씀이 아이를 잃은 내 친구와 세월호 가족들과, 그리고 그 아픔 가운데 고통하는 이 땅의 수많은 부모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기원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눅20:38
조성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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