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팔레스타인의 평화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차코르 대주교가 있습니다. 이 분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한 것이 2008년입니다. 시카고에서 열린 ‘한반도와 팔레스타인의 평화문제’ 세계컨퍼런스에 참석했다가 들은 것이지요. 알고 보니 2006년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감리교대회’에서 만날 번한 분이기도 했습니다. 감리교세계대회에서 분단과 평화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었지요. 차코르 주교는 서울에 올 계획으로 비행기 티켓까지 구입했지만,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의 교전으로 서울에 오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는 대신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쓴 편지를 세계감리교대회 앞으로 보내왔습니다.
편지에서 차코르 대주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와 교구 성도들은 요즈음 같은 공포를 느껴 보지 못했고, 요즈음처럼 주님을 의지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제가 이곳을 떠난다면 사람들은 ‘대주교가 겁이 나서 떠났으므로, 우리도 떠나야 된다’ 이렇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성도들과 함께 위험과 공포를 나누길 원하신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들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나와 교구 성도들은 갈릴리가 중동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라고 확신하며, 세월이 흘러 여러분 모두를 부활의 땅인 이곳 갈릴리로 초청하는 명예로운 일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차코르 대주교 이야기를 접하였을 때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때까지 차코르 대주교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이,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게 말입니다. 나 자신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얼마나 무신경했는지를 실감하였지요. 한국의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팔레스틴으로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그럼에도 그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심지어는 자살 폭탄테러로, 혹은 미사일 공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데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차코르 대주교 같은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게 하십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일 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참사를 맞닥뜨렸을 때 우리 모두는 충격과 분노에 빠졌습니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영논리가 등장하고, 유언비어가 퍼졌습니다. 뜨거웠던 공감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매일의 사건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비극이 전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그림자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문명수목사 같은 분을 세워서 우리 사회의 비극을 증언하게 하셨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세월호 참사 현장을 수습하며 가족들을 품어주던 문명수목사님이 소천한 것은 지난해 10월 3일입니다. 문목사님이 소천할 때의 나이가 53세였으니 나와 거의 동연배일 것입니다. 그 분이 했던 일은 귀찮고 하찮은 일, 그래서 표도 안 나고 폼도 안 나는 일. 그러나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 그것이 문목사님이 했던 일입니다. 온 맘을 다해 그분은 그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 분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을 얻어 하나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사람을 '증인'이라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문목사님은 한국교회의 증인이었습니다. 온몸으로 슬픔을 감싸 안고 하나님이 현장에 계시다는 것을 밝히 드러낸 증인이었습니다. '증인'은 담대한 믿음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간 사람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순교자(martyr)란 뜻도 갖고 있지요. 세월호 참사 일주년이 코앞인 이 때, 오히려 더 많은 증인이 요구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떤 증인으로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할까요.
이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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