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고 질문하도록 하라
이제 곧 개학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새롭게 진급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공부를 하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는 아이가 하나 있다. 이 아이로 인해서 우리 집은 현재 상당히 긴장 가운데 있다. 새로 가는 학교가 아이가 원하는 학교가 아니라서 그렇다. 주변의 다른 학교보다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약하다고 하고, 학생들이 공부하는 아이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서로 격려하며 파이팅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어떤 전략을 세워서 나갈 것인지 매일 논의에 논의를 거치고 있다. 심지어 동아리는 어떤 것을 지원하고 참여할 것인지도 서로 의논한다. 벌써 어느 학교에서는 20명 뽑는 동아리에 160명이 지원해서 시험을 본다는 소문이 나왔단다.
이 모든 논의는 결국 좋은 대학을 가고자 하는 의지이다. 아이의 소원은 서울에 있는, 그래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것 같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무슨 명문까지는 꿈을 꾸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를 볼 때 자신이 3년 열심히 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은 대학에 신문방송학과를 가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학원선생님과 엄마의 지원을 받아 열심히 해 보고자 열의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보고 있으면 입맛이 씁쓸하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이들과 별반 다른 것 같지 않은 아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도대체 왜 우리는 공부를 하는 거지?’하는 것이다. 대학이라는 목표만을 가지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아이들을 보면 대학을 간 이후에 이 아이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이라는 그 최고의 목표를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 아이들은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아이에게 한 마디 해 주려 한다. ‘공부는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그 기반이 되는 지식들을 주는 것이다. 나를 바로 보고 세계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만들어 주고, 커서는 이 사회에 이바지하고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과 기능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네 자신이 행복하고 더불어 사는 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이다.’
이 이야기가 아이에게 그저 그런 잔소리가 아이었으면 한다. 눈앞에 보이는 헛된 목표가 아니라 평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긴 여정의 목표가 되었으면 한다. 그게 삶이고 예수 믿는 우리가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벌써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자신이 부족하다.
조성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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