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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16]
 
 
 
     
 
 
 
작성일 : 15-02-24 00:37
   
봄은 오는가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72  


봄은 오는가


  새 봄은 메마른 나무의 가지 끝에서부터 찾아온다. 남녘땅 생강나무마다 어느덧 싹이 움튼다니 이제 보름이 못 되어 꽃소식이 찾아올 듯하다. 봄은 개나리, 산수유, 수선화의 노란빛깔처럼 이내 화사한 얼굴을 내밀 것이다. 아직 영하의 날씨지만 봄 타령이 절로 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겨울을 춥게 사는 사람일수록 봄소식을 일찍 느끼게 마련 아닐까? 그러기에 봄을 기다리는 ‘대춘부’(待春賦)의 구절구절은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하다.

 

  봄을 가리켜 ‘하나님의 의지’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말라빠진 나뭇가지에 새 순이 돋고, 꽁꽁 언 그늘에도 눈록색의 싹들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신비가 놀랍다. 계절의 변화를 맞을 때마다 창조주의 가슴을 실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꽃샘추위와 잎샘추위를 몇 차례 치루겠지만,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듯 사순절은 천천히 봄을 맞이하면서 조금씩 깊어간다. 


  96년 전, 3월 1일 역시 봄이 오는 길목이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에게 봄은 쉬이 오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봄이 오고 가는 것을 수십 차례 겪으면서도 늘 진정한 봄소식이 그리워 번번히 애상조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슬픔의 봄을’, ‘봄날은 간다’ 따위의 노래 가사들은 봄의 허무함과 슬픔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착취는 가난한 살림을 더욱 궁색하게 하였다. 그런 봄철의 곤궁 때문에 ‘봄 사돈은 꿈에 보아도 무섭다’느니, ‘봄에 의붓아비 제사지낼까’와 같은 속담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누구나 읽어 본 교과서 동화이다. 어떤 거인이 자기 집 너른 마당에 아이들이 들어와 노는 것이 싫어 담장을 높이 둘러쳤다. 그때부터 높은 담 안에는 봄이 사라졌다. 바깥 세상에 봄이 가득할 때에도 그 집은 모진 한겨울이 계속되었다. 외로운 거인의 집에 새 한마리가 날라 들어온 것이 변화의 계기였다. 새소리를 아름답게 느낀 거인의 마음에 봄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그 집 마당에 들어와 놀기 시작하자, 비로소 완연히 봄이 찾아왔다. 거인의 마음도, 담장도, 봄눈 녹듯 허물어진 것은 불 보듯 환한 일이다.


  물론 봄은 동화처럼 찾아오지는 않는다. 우리 민족의 봄은 자연의 순환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획득한 것이다. 당장 3.1운동만 하더라도 비폭력적 운동을 자랑하지만, 무려 7,500명이 죽고 14,000명이 부상당하였다. 서대문 형무소가 넘쳐난 것은 당연하였다. 그로부터 해방이 찾아온 것은 무려 26년이 지나서였다.


  올해로 ‘3.1 운동’ 96년, 해방 70년을 맞았지만 한-일 관계는 여전히 꽁꽁 얼어붙었다. 최근 아베의 일본은 지난 시기에 어렵게 고백한 반성문조차 수정하려고 한다. 미야자와 담화(1982.8), 고노 담화(1993.8), 무라야마 담화(1995.8)는 이미 역사가 된 문서들인데, 그것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꼴불견이다. 일본인의 입에서 역사왜곡 시정, 위안부의 강제동원 인정,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 등을 고백한 문서가 나오기 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이젠 그 마저도 자신을 부정하려는 것이다.


  돌아보면 일본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안팎의 식민주의와 친일의 부끄러움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소동이든, 뉴 라이트 식민사관 파동이든, 일련의 역사 시시비비에서 보듯 과거 청산은 정치인이나 역사학자에게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과거에 대한 역사의 책임은 현재에 대한 역사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일 간에도, 우리 자신의 인식에도 진정한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동아시아 세 나라는 불행한 역사에 대한 성실한 반성과 의지적 청산 없이 공통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분단 70년을 맞은 오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협력과 안정 없이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은 요원함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96년 전 3.1운동에 앞장섰던 기억을 두고두고 자랑하듯, 장차 이루어갈 민족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도 깊이깊이 새겨냈으면 한다. 통일에 대한 염원과 평화에 대한 갈증 역시 어느 사이 다가온 봄날처럼 그렇게 웃자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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