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노래한 사람 김광석
흐린 날에는 김광석 형의 노래를 듣곤 한다. 신은 그를 사랑해서 일찍 불러갔지만 많은 사람들은 가슴에서 그를 놓아주지 않았고, 또 다른 가인들은 가슴과 입을 통해 그의 노래를 되부르고 있다.
김광석 형은 나의 고등학교 3년 선배이다. 그리고 나는 한때 고등학교 총동창회 회보를 만드는 편집부 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 무렵에 김광석 형과 전화 인터뷰를 마치면서, 나는 개인적인 질문이라고 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어보았다.
" 형, 학교 행사에 와서 노래를 부르면 돈도 얼마 안 줄 텐데 왜 와요?"
" 그건 고마워서 그래."
" 뭐가 그리 고마운데요? "
" 솔직한 절망을, 가르쳐줬어. 거짓 희망을 심어주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좋았어.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그리고 다시 출발해야 할 자리가 어딘지 알 수 있게 해줬어. "
솔직한 절망의 세상을 보여준 학교, 그게 현실이라고 가르쳐 주었던 학교, 학생들에게 희망을 강요하지 못한 학교, 장미가 깔린 꽃밭이 아니라 황무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던 참 멋없는 학교. 그래서 늘 미안해하는 교사들이 많았던 학교. 그리고 그 학교를 사랑하고, 가슴 시리도록 못 잊어 하고, 부르면 언제나 달려온 바보 같은 노래쟁이, 세상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절망 속에서 찾았던 어설픈 철학자, 김광석.
형이 이야기했던 절망은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열심히 공부만 하면 황금의 도시가 네 앞에 펼쳐진다는 헛된 희망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 있다는 솔직한 절망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랬다. 우리들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께서는 힘겨워하는 제자들 앞에서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실 때가 많았다. 괜찮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음에 대해 늘 미안해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신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삶에 대해 신에게 물어보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고 침묵과 행동으로 말씀해 주셨다.
나는 지금 교사의 자리로 돌아간다. 4년 전 건강이 아주 안 좋아 세상과 이별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교단을 떠났던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은사님들께 전화로 소식을 전할 때 많은 분들이 축하한다는 말씀 대신에 학생들과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나는 김광석 형이 이야기했던 ‘절망’에 포함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건 ‘절망의 자리에서도 너와 함께 있겠다.’는 선생님들의 마음이었다. 절망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그 아픔을 제자들과 함께 하려했던 선생님들의 마음, 그 거인들의 사랑을 이제 나도 흉내 내기 위해,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교단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처음 주님을 떠나 세상을 향해 나가던 제자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고 배시시 웃음 지어본다.
문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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