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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20 22:39
   
물 반 컵의 미덕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65  


물 반 컵의 미덕


누구나 아는 것처럼 반 잔이 채워진 물컵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반밖에’가 되기도 하고 ‘반이나’가 되기도 한다. 실상(實狀)보다는 심상(心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숫자와 관련된 이 비슷한 이야기는 성경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열왕기상 19장에 등장하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 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 이젠 나 하나밖에 없지 않느냐는 불평 섞인 절망의 외침이 싸움에 지친 엘리야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칠천이 있다!” 7000, 묘하게도 이 숫자는 엘리야의 교만을 꾸짖는 동시에 엘리야의 외로움을 위로하는 숫자가 되었다. 자만하지 마라. 너만이 아니라 너 말고도 칠천이나 있다. 외로워하지 마라. 너만이 아니라 너 말고도 칠천이나 있다. 분명히 하나의 실상이었지만 이 묘한 숫자는 신비롭게도 선지자의 교만과 절망을 모두 아울렀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물질만능주의와 함께 교회는 시들고 타락하여 진정한 목회자도 드물고 진정한 그리스도인도 드문 그런 시대가 도래했다고. 옛날 옛적 ‘목사’라는 이름만으로 신용과 진실이 보증되던 시절도 있었다고 들었다. 보릿고개를 넘던 가난한 시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으로 아무 담보도 없이 쌀 한 되를 외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는 전설도 들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 단어들은 제 하나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목사 앞에는 ‘좋은’, ‘욕심 없는’, ‘진실한’ 등의 수식어가 붙게 되었고, 그리스도인도 사정은 다르지 않게 되었다. 늘어나는 지저분한 수식어만큼 목사나 그리스도인 같은 단어들은 그 자체로 변별력을 잃은 의미 없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모두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적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자. 언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많았던 시대가 있었던가? 인구 전체가 그리스도인이었던 서양의 중세시대는 말할 수 없이 참혹한 죄악의 시대였다. 소위 ‘기독교국가’라는 것은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까웠음을 역사는 증명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그랬다. 예수께서 들려올리신 이후, 모든 시대와 공간을 지나도록 진정한 신앙인은 늘 소수였다. 저 묘한 7000처럼 아무리 많은 것처럼 보여도 고작 칠천뿐이었고, 아무리 없는 것처럼 보여도 든든한 칠천은 항상 있었다. 그러니 교회가 망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절망은 아직 이르다. 이 혹독히 추운 겨울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들의 모습이 마침내 드러나는 계절일 뿐이니까. 그러기에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나 자신에 관한 것이다. 나는 과연 이 7000에 들어있는 것일까? 시대를 욕하기는 쉽고 빠르나, 그 속에 있는 자신의 책임을 찾고 묻는 일은 어렵고 느리다. 절망을 토로하고 분노하는 일조차 때로는 교만일 수 있고, 때로는 책임회피일 수 있다. 두려움과 수치를 잃어버린다면 타락은 한 순간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건네시는 물 반 컵의 미덕을 잊지 말도록 하자. 물은 언제나 반 컵이며 실상보다는 심상이다. 절망은 오히려 쉽다. 절망이니 희망이니를 따지기 전에, 무릎 꿇지 말아야 할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내가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는데, 그들은 한 번도 바알에게 절한 적이 없고 바알의 우상에게 입을 맞춘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왕상 19:18)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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