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하기 혹은 않기
사순절을 며칠 앞두고 어느 기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영문도 모른 채 “그냥 살지요”라고 짧게 답했다. 너무 싱거운 대답이었나 싶어, 이내 진지한 모드로 바꾸어 둘러댔다. “사순절에 무엇 무엇을 금(禁)하기보다 그동안 못한 것을 해보려합니다”. 아마 ‘성회수요일’을 앞두고 교계를 스크린 하는 기사를 만들어 볼 취지였나 보다.
어느 핸가 여선교회 문화부장 세미나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마침 사순절을 하루 앞두고 있어, 일 년 중 가장 경건한 두 절기인 대림절과 사순절을 중심으로 현대인이 생활 속에서 참여할 수 있는 몇 가지 문화 콘텐츠를 준비하였다. 대림절과 달리 사순절 이야기는 쉽지 않았다. 교회마다 과도하게 금욕 분위기를 강요하다보니, 십자가 이야기조차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평소 고민이기도 하다. 십자가를 말하면서 점점 아름답게 이야기하는 화법을 사용하게 된다. 이전과 다른 ‘까칠한’ 현대인에게 적절한 접근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순절에는 너나없이 무엇무엇 ‘하지 않기’를 강조한다. 과욕, 과식, 과용, 과락 등 모든 ‘지나침’(過)을 삼가는 것이다. 침묵, 절제와 금식 등 평소 제대로 하지 못한 경건생활을 새삼 의욕적으로 다짐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은 허용되고, 또 무엇은 금지되는가? 금욕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는 계명을 준수하는 일은 누구나 공감한다. 문제는 성경은 문제시하지 않으나, 전통에 따라 금지된 규칙들의 경우이다. 그것은 선과 악의 차원이 아닌, 문화와 정서 혹은 시대정신과 취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회사에 유명한 ‘아디아포리즘’ 논쟁이 대표적이다. ‘아디아포라’의 사전적 뜻은 ‘그 자체로서는 가(可)한 것도 아니고 불가(不可)한 것도 아닌 행위’를 의미한다. 대개 부수적이어서 대수롭지 않고, 무관심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보기를 들어 독일 경건주의 운동에서 포에트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규칙을 정하여 ‘댄스, 발레, 연극, 고리사채, 어음거래, 환금업, 연회, 술 취하는 일, 주사위 놀음, 호화로운 옷 입는 일’을 금지하였다. 영국의 청교도와 프랑스의 칼뱅파 위그노가 금기와 청빈을 엄격히 지킨 것과 그 맥락이 같다.
루터의 영향으로 비교적 세속적 습관에 관대한 독일 개신교회도 사순절 기간만큼은 경건생활 캠페인을 벌인다. 그 이름은 ‘일곱 주간의 포기’(Sieben Wochen ohne)이다. ‘일용품- 생명을 위한 수단’이란 주제로 벌이는 사순절 경건생활운동은 술은 물론 초콜릿 등 달콤한 군것질 금지, 육류 소비 줄이기,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 시청 절제 그리고 과도한 취미생활과 고질적인 습관의 중단 및 고치기에 힘쓰는 일이다. 공식보도(epd)에 따르면 이러한 복음적인 경건생활 참여자가 약 200만 명 이상에 이른다니 놀랍다.
대중적 경건은 일상의 습관을 당분간 ‘포기’하려는 실천을 의미한다. 일상의 욕심을 절제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경건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물론 절제와 포기는 단순한 금욕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려는 자기비움(Kenosis)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를 닮고, 배우며, 동행하려는 신앙의 수련기간이다.
사순절은 억지 경건과 무리한 절제가 아닌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나와 화해하고, 세상의 아픔과 연대하며, 이웃의 고민과 공감하는 때이다. 사순절과 함께 어느덧 새봄이 느릿느릿 다가온다는 사실은 따듯한 은총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맞추는 ‘바라 봄’이 되길 소망하는 시간, 이 때가 사순절이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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