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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17 00:39
   
순간과 영원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65  


순간과 영원


시간에 대한 개념으로 가장 짧은 것을 순간(瞬間)이라 한다. 불가에서는 찰나(刹那)라고 한다. 반대로 가장 긴 시간 또는 시간의 개념을 뛰어 넘는 것을 영원(永遠, eternity)이라 한다. 기독교는 죄인 된 인간의 유한한 삶에 최고의 희망과 가치로 영생(永生)을 제공하고자 한다. 불가에서는 천지의 개벽에서 생성, 소멸까지의 시간을 겁(劫, kalpa)이라하며 가장 긴 시간으로 무량겁, 영겁(永劫)을 이야기한다. 겁(劫)의 산스끄리뜨 원어는 깔빠(kalpa)로, 분별시분(分別時分)·분별시절(分別時節)·장시(長時)·대시(大時) 등의 의역어가 있다. 하지만 이것의 표기에서 대표어는 ‘겁(劫)’으로, 이는 온전한 표기가 아니다. 깔빠에 해당하는 한자 음사어 ‘겁파(劫波)’ ‘갈랍파(羯臘波)’ 등으로부터 편리성에 의해 한 글자로 줄여 사용된 말이다. 마치 보리살타(菩提薩埵; bodhisattva)를 줄여 보살(菩薩)이라 하는 것과 같다. 고대인도 브라흐만교에서 익히 사용해오던 시간 단위인 겁(劫)은 불교에 차용돼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대표하며, 천지가 성립·존속·파괴·공무(空無)가 되는 하나하나의 시기를 말하며, 측정할 수 없는 시간, 즉 몇 억만 년이나 되는 극대한 시간의 한계를 가리킨다.


우리에게 놓여 있는 시간은 유한하다. 인간은 시간이란 절대적 존재 앞에 약하며 거스를 수 없다. 현대인은 시간에 쫒기며 살고 있다. 다원화되고 여러 분야에 그리고 많은 조직과 관심사에 연계되어 있는 현대인은 복합적 연계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복합된 연결에서 오는 다양한 편리와 이점이 있는 동시에 많은 번잡함과 번거로움과 바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시간에 쫒기는 현대인을 독일 작가 미카엘 엔데는 <모모>란 소설에서 회색군단이 인간의 시간을 빼앗아 가는데 한 원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원이란 시간도 지금이라는 순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시인 구상은 <오늘>이란 시에서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영원에 비하면 하루는 찰나와 같지만, 그 찰나 같은 오늘 하루들이 모여 영원을 이루게 된다. 로마의 대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는 "오늘(현재)에 충실하(붙잡으)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고 말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영국 최고 명문인 웰튼 고등학교에 키팅 선생이 문학 교사로 부임한다. 이 학교 졸업생인 그는 학교의 규율과 학습방침은 물론 부모와 학교가 바라는 대로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벌레가 되어버린 학생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며 그는 이를 바꾸고 싶어 한다. 아이들에게 더 중요한 게 있단 걸 알려주고 싶어 그는 학생들과의 첫 만남에서 그 유명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친다. 그리고 자신만의 삶을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살라고 가르친다.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기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라./바보 같은 사람들이 뭐라 비웃든 간에...”


교황 요한 23세는 매일 매일을 하느님 안에서의 충만으로 살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 어느 날이고 어느 달이고 다 똑같이 주님의 것이다 따라서 똑같이 아름답다.”, “ 어느 날이고 태어나기 좋고 어느 날이고 죽기 좋은 날이다.”라고 말했다.


동서양의 많은 성현들의 가르침은 오늘을 충실하고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고 의미있게 사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중세 영성가 마이스터 엑하르트(Meister Eckhart,1260~1327)는 일상과 현재의 삶에서 깊은 영성과 깨달음을 강조한다. 그는 초탈과 초연은 한적한 곳에서 일체의 생각을 멈추고 활동을 중지하는 특별한 수행이 아니라 일상생활 가운데서 마음의 중심 혹은 내면을 잃지 않도록 하는 마음의 훈련임을 말한다. 자기애와 자기 집착을 떠나 사물을 하느님의 빛 아래서 더 순수하고 고귀하고 마름답게 대하며 사는 법을 강조한다. ‘시간의 부재不在, 순간의 영원화’가 참된 시간과 삶의 자세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 삶의 매 순간은 영원에 이어지는 가장 중요하며 값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찰나가 바로 영원의 자리인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인간의 일상적 시간관을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시간성(kairos)을 제시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But, beloved, be not ignorant of this one thing, that one day is with the Lord as a thousand years, and a thousand years as one day.


'지금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란 질문은 늘 우리에게 중대한 도전이며, 경건과 떨림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결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김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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