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境界人)
적반하장. 출애굽 이후 광야의 방랑 생활 동안 보여준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딱 그것이었다. 아마도 민수기 16장의 이야기는 그 모습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세와 아론의 지도체제에 불만을 품었던 일군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모세의 권위에 대한 기세등등했던 도전은 하나님의 판결로 일찌감치 결판이 났다. 도전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몸에 익은 백성들의 적반하장은 영락없이 다시 등장했다. 백성들은 당신들이 뭔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느냐고 따졌다. 너희들이 죽인 거라고. 하나님의 인내심은 바닥을 쳤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회중을 떠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켜버리기 위해 치명적인 전염병을 내리셨다.
불복종. 모세는 이따금씩 하나님의 뜻을 어기곤 했다. 백성의 배반에 치를 떠시며 이들을 멸망시키고 대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하나님께, 모세는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주의 책에서 지우시라는 말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돌리려 애썼던 적도 있었다. 그 모세가 이번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모세는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했다. 대신 그는 제사장 아론에게 제단의 불을 담은 향로를 가지고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빨리 가서 그들을 위해서 속죄하라고. 아론은 백성들을 향해 달렸다. 이미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최후엔 결국 14,700 명이 죽었다고 한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었다.
“그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섰을 때, 재앙이 그쳤다.” (민 16:48)
그를 경계로 죽음과 생명이 갈렸다. 결국 제사장의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죽음과 생명의 경계를 지키는 일, 거룩과 부정의 경계를 지키는 일, 더 이상 죽음이 퍼지지 못하게 몸으로 죽음을 막아내는 일, 그렇게 경계인으로 남는 일. 독특하게도 신약의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불렀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었던가? 역시 생명과 죽음 사이에 서서 죄로 인한 저주의 죽음을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의 몸을 던져 막으신 것이 아니었던가. 그 분이 하신 일은 결국 생명과 죽음 사이에 서서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건지신 일이었다.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다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 역시 경계인인 셈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에 서 있어야 할 경계인, 죽음의 세력이 넘쳐나지 못하게 몸으로 막아서야 하는 경계인. 유난히 죽음의 세력이 넘쳐나는 이때, 죽음의 세력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 한다. 너도 당할지 모르니 멀찌감치 피해있으라 조롱한다. 그러나 그럴 수야 있겠는가. 만약 이 자리를 벗어난다면 우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버림받아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맛 잃은 소금이 될 뿐일 텐데. 그러니 잊지 말도록 하자. 우리는 경계인이다. 죽음과 생명의 사이에 서서 죽음의 세력을 막아내야 할 경계인, 나를 중심으로 죽음과 생명이 갈리는 경계인. 더 이상 짠 맛을 잃기 전에, 더 이상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전에, 서둘러 속죄의 향로를 들고 속히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로 가 서자.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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