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값
해가 바뀌어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하나씩 얻은 것이 있다. 누구도 사양할 수 없는, 바로 ‘나이’이다. 나이 어린 것 때문에 주눅이 들었다면 조금 기를 펼 테고, 묵은 나이 때문에 부담스러운 사람은 멍에를 하나 더 얹은 셈이다. 사실 해마다 한 켜 한 켜 두터워지는 나이테를 반가워하는 사람은 없다. 인생의 비만증과 같아서 나이 다이어트를 시도하지만, 오히려 나이의 부피감만을 확인할 뿐이다.
비록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마저 늙는 사람은 없다. 나이 값을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음이 천천히 늙기 때문일 것이다. 앞선 몸이 늦은 마음더러 ‘이젠 나이 값을 하면서 살라’고 채근하면, 그제야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고 시늉하는 식이다. 그런 몸에게 항복하면 정말 늙는 것이다. 물론 만년청춘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이마다 어울리는 삶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이에 대한 유머에 점점 귀가 솔깃해진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유머도 진화하고 있다. ‘10대 부터 100대 까지’ 나이를 풍자한 유머 속에는 세대의식에 대한 공유와 위기의식에 대한 공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례로 ‘없다와 있다’ 시리즈는 나이 대 별로 정곡을 파고든다.
먼저 헛헛한 웃음을 품게 하는 ‘없다’ 시리즈를 보자. ‘10대는 철이 없다, 20대는 답이 없다, 30대는 집이 없다, 40대는 돈이 없다, 50대는 일이 없다, 60대는 낙이 없다, 70대는 이가 없다, 80대는 처가 없다, 90대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100대는 다 필요 없다’. 이를 긍정 모드로 바꾼 것이 ‘있다’ 시리즈이다. ‘10대는 끼가 있다, 20대는 젊음이 있다, 30대는 짝이 있다, 40대는 폼이 있다, 50대는 멋이 있다, 60대는 가족이 있다, 70대는 쉼이 있다, 80대는 추억이 있다, 90대는 소망이 있다, 100대는 천국이 있다’.
남성의 경우, 노년에 대한 위기의식이 여성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사회 환경의 변화 때문에 남자들이 나이보다 먼저 늙기 때문이다. 은퇴 연령이 빨라지고,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면서 일벌레로 산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여유가 없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남자들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평소 당당했던 남자들의 기세에 움 추려온 여자들은 이제 숨겨둔 비장의 패를 내밀 참이다.
어르신 말씀이 그렇다. 우리 속담에 ‘웬 못된 것이 촌수 높은 것’이라고, 나이가 들면서 ‘척’해야 할 일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른다고 한다. 집 밖으로 움직이면 돈이 들고, 인사치레 하려해도 돈이 들고, 남 앞에서 입만 벙긋해도 돈이 드니, 수입 없는 노년에는 웬만하면 존재감이 없는 모습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아내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런 초라한 영감이 볼썽사나우니 아내의 역정도 점점 높아만 간다고 한다. 바야흐로 나이가 들수록 ‘끈 떨어진 연’의 신세가 되는 것일까?
그러니 젊어서부터 부부 사이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대등하고, 민주적인 살림살이를 함께 해 나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안성맞춤 부부가 있을 리 없다. 크고 작은 다툼 가운데 가장 어울리는 타협점을 찾는 것이 부부가 아닌가? 자녀들에 대한 투자 역시 일방적일 수 없다. 시대변화가 어쩌니 저쩌니 해도 반드시 사랑의 환급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사실 인생이란 드라마는 주인공하기 나름이다.
이 세상에 노년의 위기를 단박에 해결해 줄 ‘불로초’는 없다. 그렇다고 은행잔고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지금부터라도 체력 관리, 취미생활, 친구관계, 부부간 다정함, 지적 감수성, 부업능력 등 나이들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내 인생의 부피를 채우고, 삶의 존재감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부터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얼마나 현명한가?
그리고 기쁠 때나, 고달픈 때나, 변함없이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자.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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