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로 드려진 목회
사도 바울은 마라톤과 같은 선교 사역을 마치고 골인 지점에 이르러 우승 테이프를 끊는 심정으로 자신의 복음 열정을 술회하였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6-8)
‘전제’라는 말은 ‘관제’라고도 하는데,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서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술을 다 따라 부어 제사를 드림같이 사도 바울은 자기 생명을 주님께 드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순교할 최후가 가까웠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얼마나 위대한 고백입니까?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추운 겨울을 나무가 견딜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붉은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도 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는 사도 바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은퇴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몽땅 제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사도 바울이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고백한 것같이 의의 면류관을 쓰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의의 면류관은 사도 바울만의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곧 주의 재림을 사모하고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워 최후 승리한 모든 성도들에게 예비된 것입니다.
저도 이제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정한 65세의 정년은 5년 정도 남았습니다. 이제 제 사역도 정리를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의 목회 좌우명은 ‘아사교회생(我死敎會生)’입니다.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해야할 존재이지 대접받고 존귀함을 얻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자기가 살겠다고, 자기가 높아져야겠다고 하면 교회는 죽습니다. 목사가 교회를 대표하여 희생하고 낮아질 때 교회는 살게 됩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자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교인들에게도 내가 돈을 원하고, 명예를 욕심내면 가차 없이 내어 치라고 설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인들은 목사를 믿고 따라와 주었습니다. 이제 남은 목회기간에도 이렇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과 같이 마침내는 선한 싸움을 모두 싸우고 최후 승리를 얻어 의의 면류관을 받기를 원합니다.
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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