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올 풀어진 매듭
심장병에 시달리고 있는, 오십을 바라보는 아들을 위해서 연로하신 어머니는 여름 이후부터 뜨개질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겨울에 접어들 때부터 침침한 눈, 불편한 어깨, 관절염에 시달리는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만들어진 그 고운 털옷을 입고 나는 출근을 했다. 그런데 퇴근할 때 즈음 가만히 옷을 보니 밑단에 털실 한 가닥이 삐죽이 나와 있었다. 그 삐죽 나온 털실에 신경 쓰실 어머니가 떠올랐다. 아들보다 훨씬 더 많이 몸 구석구석이 고장 나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늘 당당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어머니. 그러니까 나를 감싸고 있는 그 수많은 털실보다 삐져나온 한 올의 털실에 더 큰 신경을 쓰실 어머니, 아니 엄마, 때문에…
큰 딸이 열두 살 때 나에게 슬픈 목소리로 심각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 아빠, 우리는 왜 가난해요? "
그때까지 그 친구에게 받아본 질문 중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대답하기 싫은 질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대답 대신에 그저 조용히 아이의 방을 청소한 뒤, 우리 부부가 자던 침대를 개조하여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이층 침대를 만들어 두 딸 방에 넣어주었다. 큰 딸과 작은 딸은 매일 침대에서 즐겁게 장난을 치다 잠이 들곤 했다. 잠이 든 아이들을 보면서 아내는 입버릇처럼 예쁜 이층 침대를 사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랬다. 어찌 생각하면 자식에게 내 것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자식에게 더 줄 수 없다는 사실만 생각했었다.
나는 솔직히,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나도 모르게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몸치장을 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세월이 묻어나는 내 몸을 보면서 한숨짓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시간은 흐를 것이고, 나는 그 흐름만큼 어른의 위치에서 세상을 걸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점점 내 아픔은 저 쪽으로 밀어 넣고 자식들을 위해 두 달 이상 눈이 짓무르면서 어깨가 결리면서 뜨개질을 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한 올 풀어진 그 매듭만을 안타깝게 바라볼 우리 어머니의 마음을 흉내 낼 것이다. 그리고 내 시선은, 아무리 방향을 바꾸려 해도 어머니를 바라보지 못하고 딸들만 바라보고 있는 참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나는 걸어갔었다.
오전에 아내는 족발을 사왔다. 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난히 족발을 좋아하시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두 달이 지났고, 며느리는 다시 시어머니의 빈자리를 느꼈나보다. 그런 아내를 뒤에서 살포시 안으면서 나는 그저 함께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못난 자식이 떠나간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음에 대해 알게 되어 목 놓아 울었다. 그 울음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땅에서 힘겨웠던 그만큼만, 천국에서 어머니가 안식을 누리시길 바라는, 간절한 기도였다.
문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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