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꿈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친구야
지난주에 어느 산기슭에 있는 여학교에 강연을 갔었어. 그러니까 그 학교는 소년원이었어. 소년원에 있는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운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소녀들의 마음을 다독거리고 희망을 함께 나누기 위해 갔어. 강당에 앉아 있는 소녀들을 보고 있는데 자꾸 우리 두 딸이 떠오르더라. 그리고 그 친구들 부모님의 마음이 떠오르고 말이야. 그래서 일부러 더 즐겁게 강연을 했어. 농담도 하고 간단한 춤도 추면서 흥겹게 시간을 보냈어. 나하고 함께 하는 두 시간 만이라도 그 친구들을 신나게 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말이야. 너도 알지? 상담을 할 때 상담사가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것, 상담을 받는 사람을 불쌍하게 생각하면 안 되잖아. 상담사는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의 내면에 있는 힘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그러니까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줘야 하잖아. 그렇게 생각해보면 일종의 집단 상담으로 진행된 그날 프로그램은, 어쩌면 실패한 상담일 수도 있었어. 그래서 겉으로는 나도 즐거웠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계속 불편함이 떠나질 않은 시간이었어.
강연을 마치고 강당을 나서는 어떤 친구가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 오늘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를 시작했어.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나에게 그렇게 말했어. 자기는 집에 가기 싫다고 여기가 더 좋다고 말이야. 소년원이 프로그램을 잘 만들고 정성껏 보살핀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그 친구가 집과 학교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이야기만 듣고 있었어. 그런데 그 다음 그 소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어. 좋은 강사님들 오실 때마다 자기는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힘든 마음을 보였더니 사람들이 자꾸 도와주려고만 해서, 언제부터인가 행복하다는 이야기만 했다고 해. 자기는 사실 그냥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하더라. 그리고 선생님은 아무 것도 안 물어보고 그냥 이야기를 들어만 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더라. 나는 조용한 소리로 그 친구에게 네 삶에서 없었으면 하는 게 뭐냐고 물었어. 놀란 눈이 된 그 친구는 고개를 숙이더니 이렇게 말했어.
‘차라리 꿈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현실을 그냥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열여섯 아가씨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데, 그게 왜 그렇게 꽃비처럼 아름답게만 보였는지 모르겠어. 그 친구와 나는 ‘미안하다’, ‘아니에요 고맙습니다.’는 말을 몇 번이나 주고받았는지 몰라. 하고 또 했어.
친구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 그리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것 같아.
문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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