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레게
새해가 밝았다. 누구든 한 해를 연출하고, 개념 있게 살고 싶어 한다. 비록 작심삼일에 그칠지언정 자신의 일 년을 설계하고, 평소 원하던 삶을 위해 과감히 투자한다. 오늘은 내가 존재하는 인생의 나날 중 가장 젊은 시간이라니 그 선택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저 마다 신앙성장이든, 교양 있는 신앙생활이든 경건한 이벤트를 계획한다. 성경통톡이 대표적이다. 무리한 목표에 쉽게 지칠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새 봄쯤 요단강을 건널 만큼 진도를 따라잡는 이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시중에 성경통독을 위한 큐티와 통독안내 가이드북이 제법 많다. 통독을 위한 교회용 달력도 있는 것을 보면 경전읽기의 전례로 뿌리내린 듯하다.
대개 교회는 많은 이들이 성경통독과 성경필사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눈에 잘 띄는 게시판에 도표를 만들어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바쁜 일상 가운데 그 열심이 돋보이는 분들이 아름답다. 통독운동의 열심이 마치 요즘 트렌드인 ‘포인트 쌓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럼에도 성경통독 그 자체는 의미 있는 경험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의 성경책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신세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변증가라 불리는 달라스 윌라드의 말은 통독운동에 정곡을 찌른다. “1년 동안 성경의 모든 단어를 눈앞에 스쳐지나가게 하는 것보다 딱 열구절만 내 삶의 본질로 바꾸는 편이 낫다”. 통독도 중요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일이 더욱 소중하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만 여기에 덧붙여 매일매일 성경을 사랑하여 가까이하는 ‘일용할 말씀읽기’는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성경통독운동의 모델은 없을까?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그 힌트를 찾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옛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어거스틴이 겪은 고민과 갈등, 방황 그리고 회심을 담은 참회록이다. 그의 회심은 극적 사건이지만, 사실 오랜 세월동안 준비된 것이다. <고백록> 제8권 12장에 있는 내용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있었다. 그 말소리가 소년의 것인지 소녀의 것인지 나는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계속 노래로 반복되었던 말은 “Tolle lege, Tolle lege”(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는 것이었다. 나는 곧 눈물을 그치고 안색을 고치어 어린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할 때 저런 노래를 부르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전에 그런 노랫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그치고 일어섰다.
나는 그 소리를 성서를 펴서 첫눈에 들어 온 곳을 읽으라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명령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나는 사도의 책을 집어 들자마자 펴서 내 첫눈에 들어 온 구절을 읽었다. ... 그 구절을 읽은 후 즉시 확실성의 빛이 내 마음에 들어와 의심의 모든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냈다”.
어거스틴이 들고 읽은 말씀은 로마서의 한 구절이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이 말씀은 어거스틴의 생애에서 일대 전환점을 가져왔다. 주후 386년 8월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 뭔가 정돈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 때문에 너무 답답하여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던 어거스틴이었다.
꼭 통독이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자기 방식대로 말씀을 사랑할 것이다. 하루 분량의 통독을 하는 이들이든, 헤른후터 공동체의 성구집 <말씀 그리고 하루>를 묵상하는 이들이든, <다락방>이나 <하늘양식>이든 그 무슨 말씀을 읽더라도 그 삶에 톨레레게의 사건이 일어나길 바란다. 톨레레게! 이 사건을 우리식으로 요약하면 ‘음성을 듣게 하소서’, ‘말씀을 읽게 하소서’, ‘내 삶을 고쳐주소서’가 아닐까?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따르려고 내 습관과 내 성품 그리고 내 삶을 고치려고 애쓴다면, 누구든지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복된 기회를 맞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잠 30:5).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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