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을 때에
올 한 해 동고동락했던 달력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묵직했던 달력이 어느새 달랑 한 장뿐인 몸으로 위태롭게 달려있구나. 대강절과 성탄절도 지났고, 이제는 정말 말 많고 탈 많던 2014년도 ‘삼일’ 남았다. 우리는 진정 남은 삼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삼중 장애를 가졌던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가 “삼일만 볼 수 있다면...”이라 고백했던 것처럼, 나 역시 “삼일만 살 수 한다면...”이라 되뇌이며 가슴 깊이 고심해본다.
순간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내 남편을 찾아주세요>라는 논픽션 프로가 떠올랐다. 한 여인이 정신장애를 가진 남편을 간절히 찾던 내용인데, 그녀는 “내 남편을 찾아 주세요”라고 적힌 전단을 뿌리면서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사연인즉, 지난날 그녀는 장애인 보호기관 교사로 일하며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남편은 생활 능력이 전혀 없었고, 응당 살림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장애인 보호기관 교사로 취직하게 되었는데... 가슴 아프게도 남편은 자신을 장애인 보호소로 다시 돌려보내려는 줄로 오해하곤 집에서 도망쳐버렸다. 이에 아내가 남편을 애타게 찾게 된 것이다.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남편을 왜 찾습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남편은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내가 아니면 하루 세 끼 챙겨 먹지도 못합니다. 내가 아니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울먹이며 다시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이제 나도 그가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아, 사랑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도대체 정신장애를 가진 남편을 찾아 어쩌자고!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남자, 그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서 뭐하자고! 그를 찾는단 말인가. 또 이에 비하면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단편적이고, 이기적인가. 정말 바보 같은 여인…. 그러나 이 바보 같은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를 찾아 헤매는 분,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던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사랑밖에는 해답이 없다. 그래서 새해가 오기 전 우리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 역시 뜨겁게 사랑하는 일이리라. 서로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보듬어주는 것이리라. 다른 것은 좀 부족해도 무엇보다 사랑으로 충만하면 다시 새해를 힘차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살아 있을 때에 한번이라도 더
한마디의 기도를, 한마디의 찬미를 바치게 하소서.
살아 있을 때에 한번이라도 더
이웃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과 웃음을 주게 하소서.
남이 몰라줘도 즐거워할 수 있는 조그마한 선행, 봉사를
한번이라도 더 겸손한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_ 이해인
비록 모양은 다를 지라도, 사랑으로 묵은 해를 닦고 또 닦다보면 어느새 새해도 찬란하게 떠오르지 않을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해보자.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소원을 담아 말해 보자.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존경합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질 것이다. 오 주여, 살아 있을 때에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게 하소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7-8
김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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