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만나야 할 때는 재난을 만나는 것이 좋다. 죽어야 할 때는 죽는 것이 좋다.”
일본의 유명한 선승으로 스가와라 지호라는 선사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아내와 어린 자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마을 사람의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마침 여인은 코감기에 걸려 연신 코를 흘렸던 모양이다. 선사는 우연히 여인이 밥을 짓던 중 콧물이 줄줄 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말았다. 심지어 혼자 오줌을 질펀하게 싸며 놀던 아이가 밥주걱을 가지고 노는 모양도 보았다. 독경이 끝난 후 여인은 아이가 가지고 놀던 주걱으로 밥을 퍼 식사를 권했다. 이때도 콧물은 밥으로 떨어졌고 심하게 비위가 상한 선사는 배탈을 핑계로 식사를 거절했다.
일주일 뒤, 선사는 다시 그 집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엔 여인이 단술을 대접하는 것이 아닌가. 말끔히 감기가 나은 여인과 오줌도 안 싸고 방긋방긋 웃는 아이를 보며 선사는 좋은 기분에 단술을 여러 잔 마셨다. 그 모습을 보고 여인이 말했다. “선사님, 선사님이 지난주에 못 드신 밥이 너무 많아 그걸로 단술을 만들었습니다. 맛있으시면 더 드세요.” 비위가 뒤틀렸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나 선사는 곧 깊은 깨달음에 도달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재난을 만나야 할 때는 재난을 만나는 것이 좋다. 죽어야 할 때는 죽는 것이 좋다.”
어렸을 적 언젠가 아버지가 당연히 내게 주었어야 할 것을 주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돈이었는지 다른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은 정말 아버지로서는 아무런 부담 없이 내게 줄 수 있었고 주었어야만 하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어처구니없어 하던 내게 아버지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생각대로 안 된다는 일도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야.” 그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자라면서 보니 세상이 그렇기는 했다. 세상은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여전히 내 맘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세상은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전도자의 말처럼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며, 용사라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더라. 지혜가 있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총명하다고 해서 재물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배웠다고 해서 늘 잘되는 것도 아니더라. 불행한 때와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사람은 그런 때가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알지 못한다. 물고기가 잔인한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들도 갑자기 덮치는 악한 때를 피하지 못한다.’(전 9:11-12)
한 해를 마무리하며 겪었던 일들을 돌이켜본다. 좋은 일도 물론 많았으나, 그 못지않게 나쁜 일들도 충분히 많았다. 어느 해라고 특별할 것 없이 우리네 삶은 늘 그렇기 마련이다. 그리고 삶의 지혜와 신앙의 경건이라는 것은 생의 기쁨 속에서가 아니라 언제나 삶의 어두운 곳을 통해 드러난다. 내게 닥쳐오는 어두움을 내가 어떻게 만나는가의 모습이 결국 내 신앙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불행에 닥쳐, 나는 전전긍긍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재난을 만나야 할 때는 재난을 만나는 것이 좋고, 죽어야 할 때는 죽는 것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롬 8:28)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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