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도
어느새 ‘걷기도’의 계절이 다가왔다. ‘걷기도’는 ‘걷다’와 ‘기도하다’의 합성어인데, 해마다 연말이면 나 홀로 치루는 송구영신 의식이 되었다. ‘걷기도’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 2007년 가을에 인천의 어느 청년 모임에서 먼저 길을 가던 선배로서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 앞에서 내 말이 좀 지루했던지, 분위기가 점점 산만해졌다. 그래서 이야기 방향을 잠시 바꾸었다.
언뜻 주제와 관련된다싶어, 오래 기억에 간직해둔 여행담을 들춰냈다. 어린 시절 가까이에서 본 겨울 무전여행 이야기였다. 당시 중학생이던 내게, 한겨울 무전여행이랍시고 무작정 강원도 산골을 찾아 온 작은 형의 대학생 친구들은 경이의 세계였다. 그들의 무용담은 아랫목 구들장 신세를 지고 지내던 어린 내게 신선한 각성을 촉구해 주었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겨울 무전여행을 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30여 년이 넘도록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청년들과 이야기를 마치면서 뜬금없이 이런 자기다짐의 결론을 내렸다. 이제 30년 만에 내게 한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그리고 그해 12월 말에 강원도 평창 대화에서 대관령을 넘어 동해 정동진까지 사흘 길을 걸었다. 강원도의 모진 추위를 견뎌낸 일도 대견했지만, 30년 만에 자신과 약속을 지킨 일이 흐믓하였다. 그리고 해마다 연말이면 3일 일정으로 약 100킬로미터의 ‘걷기도’를 떠난다. 벌써 8년째다.
물론 처음부터 ‘걷기도’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아니었다. 해마다 반복하면서 조금씩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기를, 홀로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자연이든 도시든 모든 소리와 소음을 향해 나를 개방하며, 촘촘한 계획보다 큰 일정 속에서 자유롭게 행동하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3일 이란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 홀로 걸으면서도 자유는커녕 여전히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점점 그런 부자유로부터 해방되면서 ‘걷기도’란 이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떠오르는 대로 한해를 정리하고,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찬찬히 생각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스스로 탄식도 하고, 감사도 드리고, ‘나와 저’가 둘이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깊이 침묵하기도 한다. 그 순간이 모두 기도가 되었다. 내 소명을 생각하면서 거룩한 순례를 고민하고, 내 연약함을 느끼며 도우심을 기대하였다.
홀로 걷는 길은 눈에 오래 남는다. 초행길이지만 길을 가면서 여러 사람에게 길눈이 역할도 가능하였다. 안전을 위해 자동차가 마주 오는 방향으로 걷다 보면 종종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차가 있어, 길을 묻는다. 이미 지나온 길에 대해서라면 방향치인 나도 얼마나 세세하게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던지, 그것은 먼저 걸어 온 사람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지혜자들은 길을 걸었나 보다.
올해는 남도 땅을 걸으려고 한다. 멀리 강진에서부터 진도 팽목항까지다. 어느새 들이닥친 겨울 추위를 무릅쓴 답사 길에서 둘러 본 팽목항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그 많던 노란 리본들도 바랠 대로 바랜 채 마치 과거처럼 기억되고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그곳을 가려고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강진감리교회 오대환 목사님이 보내준 한 편의 시구가 내 마음을 그곳으로 붙잡았다.
“팽목항 등대 밑에서 눈이 떠진 순간 시계는 4시47분을 지나고 있는데 새들이 운다/ 조는 나를 나무라기라도 하듯 시음으로 운다/ 얼른 나와라 얼른 나와라/ 또 다른 새가 운다 이번에는 높은 도음으로 .. 새들아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寄宿)할 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의 식탁을 준비하신다. 내일은 더 멀리 날아라”.
아마 그 길의 끝은 나를 또 다른 각성과 결심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참! 길을 가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번번이 지팡이를 가져가는 일을 잊어서 미끄러운 눈길을 피하려고 임시 지팡이를 만든 일이 여러 차례였다. 사실 길 위에서만 지팡이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도 지팡이는 꼭 필요하다. 누구도 예외는 없더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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