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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03 22:12
   
나라 구한 기독교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13  


나라 구한 기독교


김구 선생님은 한국감리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감리교 청년회인 엡웻(Evert) 청년회의 총무로도 수고하며 1905년 도끼상소사건을 주도했던 적도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일찍이 10대에 동학에 참여하여 접장으로 중간간부를 지냈으나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에 20대 초에 승려 생활도 한다. 그의 종교적인 방황은 20대 후반에 기독교로 귀의하며 끝난다.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에 보면 그는 동학이 나라를 구하리라 생각하고 동학에 열심을 내었으나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는 무엇이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기독교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약 1백 년 전 나라를 사랑했던 한 청년이 민족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종교를 선택하는데 그 결국은 기독교였다는 것이다. 그 시절 기독교는 이렇게 나라의 희망이었고 미래였다. 그런데 그 때 기독교의 인구는 1%가 되지 않았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불과 20년이 되지 않았던 시기이다. 그런데 조선사람들은 이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 가운데서 나라의 살 길을 보았고, 희망과 미래를 본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에 많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기독교에 귀의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이상재, 김구, 안창호, 여운형, 조만식 등등 이루 셀 수 없는 인물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또는 기독교의 교육을 통해 인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은 그 암울했던 조선시대 말기를 지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나라를 구하고 민족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그래서 이 당시에 기독교의 정체성을 가리켜서 ‘애족애족세력’이라고 했다. 즉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의 초기 모습이었다.


이러한 영향력이 3.1운동을 만들어낸 것이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경험했던 기독교가 그 신앙적 열정을 가지고 나라사랑, 민족사랑을 만들어낸 것이고, 이것은 기독교 특유의 희생정신과 맞물리며 무폭력 평화시위로서의 만세운동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와 같이 당시 신앙적 열정은 개인신앙으로 머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만시지탄이 느껴진다. 지금은 기독교가 인구의 20% 가까이 되고 교세가 많이 확장되었는데 그 만한 사회적 영향력은 없는 것이다. 기독교를 통해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이들은 이제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볼 수가 없는 형국이다. 아니 기독교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을 뿐이다.


김구선생님은 말씀하시길 파출소 10개를 세우는 것 보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그 만큼 교회에 대하 신뢰가 크셨던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이 현실이 되길 기도한다. 동네에 교회 하나가 서는 것이 그 어떤 혜택보다도 크다고 사람들이 인식하길 바라는 것이다. 교회가 들어섬으로 인해서 마을 사람들이 기뻐하고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서는 이 사회가 바로 서고, 올바로 가는데 기독교의 영향력이 컸다고 후세에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조성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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