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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02 23:27
   
굿 이브닝! 대림절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66  


굿 이브닝! 대림절


  어느 새 대림절이다. 하나님의 달력으로는 벌써 새로운 한해의 문을 열었다.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밝히듯 고요한 새 출발이다. 창조의 방식대로 라면 그 시작은 역시 ‘저녁부터 아침까지’가 어울린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일 년은 365일이지만, 이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의미가 새롭다. 프랑스 격언에 ‘두 요한이 일 년을 나눈다네’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두 요한은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이다. 복음서에서 뚜렷한 조명을 받았으며,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이름들이다. 세례 요한은 하지의 성인이고 사도 요한은 동지의 성인이다. 두 인물이 한해를 반분(半分)한 셈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전통에서는 일 년을 4등분한다. 한해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나흘은 3월25일(성모 마리아의 날), 6월 24일(세례 요한의 축일), 9월 29일(성 미가엘 축일), 12월 25일(성탄일)이다. 이 날을 시작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고용기간이나, 임대계약을 맺는다. 나흘은 낮과 밤의 길이와 관련된 날들 즉 ‘동지, 춘분, 하지, 추분’과 일치한다.


  독일의 정원사 칼 푀르스트는 한 해를 ‘일곱 계절’로 구분했다. 그는 다년생 꽃과 풀을 연구한 육종가로 땅에 묻어둔 여러 해 살이 뿌리들을 통해 시절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싹을 틔우고, 잎이 자라나며, 꽃을 피워, 씨앗을 맺고 또 사라지는 생장소멸의 과정을 통해 세월의 파수꾼 역할을 한 것이다. 그가 나눈 일곱 계절은 ‘초봄(2월 말-4월 말), 봄(4월 말-6월 초), 초여름(6월 초-6월 말), 한여름(6월 말-8월 말) 가을(8월 말-11월 초), 늦가을(11월 초-12월 초), 겨울(12월 초-2월 말)’이다.


  교회력이든, 정원사의 관찰이든 공통적인 것은 한 해를 나누는 기준점은 ‘어둠과 빛’, ‘추위와 따듯함’ 그리고 이에 따른 만물의 생명력이다. 창조의 시간이 저녁부터 시작한다든지, 대림절이 한 해의 끝에 서둘러 빛을 예비한다든지 같은 지혜를 들려주고 있다. 이렇게 대림절은 시절의 변화를 일깨우며 우리에게 찾아왔다.


 
  “굿 이브닝, 대림절!”


  대림절은 우리의 저녁을 향해 묻는다. 당신의 시간은 새로운 창조를 준비하느냐고 궁금해 한다. 그 창조는 고요함과 평온함으로부터 시작한다. 과연 당신은 만물의 시계와 더불어 삶의 시간을 조정하며 사는지, 하나님의 달력과 더불어 발걸음을 맞추며 지내는지, 모든 삶에는 시작과 끝이 있음을 의식하며 생의 리듬을 느끼는지 물음을 던지고 있다.


  지난 한달 가까이 ‘기다림 초’를 알리고, 보급하면서 배운 것은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에 고요한 시간을 누리지 못한다. 일과가 늦게 끝나고, 분주한 만큼 수입이 늘어서가 아니다. 현대인은 자기 시간을 합리적으로 쪼개어 쓰는 일에 참 미숙하다. 그래서 ‘굿 모닝!’도 ‘굿 이브닝!’도 모두 포기한 사람들 같다.


  그 금쪽같은 여유를 스마트 폰에 귀를 쫑긋거리고, 화려한 컬러에 시선을 맞추는 것이 습관을 넘어 중독이 되었다. 엉뚱한 데 시간을 낭비하느라 지난 일 년 동안 책을 읽는 일도, 마음의 여행을 하는 일도 모두 일상의 숙제로 남겨두어야 했다. 마음의 여유를 잃은 것은 환경과 여건의 문제 이전에 ‘내 탓’이 아닐까? 


  대림절은 우리의 삶에 창조적 긴장을 요구한다. 오늘의 교회는 ‘할렐루야 신앙’은 만발한데, ‘마라나타 신앙’은 부재하다. 자기만족적인 신앙생활은 익숙한데, 예수님의 말씀과 그 제자의 길을 따르려는 생활은 부족하다. 이 절기는 영적 성숙함으로 새로운 삶과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창조의 빛’을 던지라는 사인이 아닌가? 우리는 종말론적 긴장감을 다시 추슬러야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서 그 이브(eve)는 이브닝(evening)의 준말이다. 어두움과 밤은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시작의 징표였다. 그 고요함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사건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렇듯 하나님의 역사는 마지막, 곧 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더라. 한 해의 종점에서 다시 창조의 영성을 일깨워 보라. 대림절 등불을 밝히는 그 저녁들마다 내 영혼의 등불 역시 밝힌다면 참 복 있는 삶이다.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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