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서양 사람들은 유머를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생각한다. 한 독일 의사가 간 조직 검사를 한다며 주사기로 내 간의 일부를 떼어낸 적이 있었다. 그는 그 조직이 담긴 작은 병을 내 눈 앞에 흔들며 눈을 찡긋한 후 아파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걱정 마세요. 남은 게 더 많으니까요.” 독일 유학생활 동안 만난 여러 재치 중 단연 으뜸은 다니던 신학교 학생식당 위에 걸린 글귀였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식당 입구 위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예수께서 시험을 당하시고 먹는 것으로, 물질적인 것으로 인간을 구원하지 않겠노라 결심하며 던진 그 비장한 말. 과연 독일스럽네.. 그런 느낌이었달까?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신명기서의 인용이다. 모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요단강 도하를 앞둔 상황에서 백성들에게 당부하며 이 말을 했다. 그는 이 말을 ‘만나’와 연결 지어 말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너에게 만나를 먹이신 이유를 아니? 그건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야,라고.
만나는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신비하게 이슬처럼 내린 꿀맛 나는 가루였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방랑 내내 이 만나를 먹고 살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들이 날마다 기적의 음식을 체험하며 살았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만나는 우리네 인생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게 되리라는 상징일까? 아마도 만나의 진정한 의미는 그 이름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린 신비한 양식 만나의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만나를 보았을 때 서로를 향해 물었던 질문에서 유래되었다. 즉, ‘만나’는 단순히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의 질문인 ‘뭐지?’(What?)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나를 먹고 살았다는 의미는 다름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을 먹고 살았다는 뜻이다. 아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 만나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알고 있는 것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이미 잘 알고 있고 잘 보이는 것으로 살아간다는 것, 물질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은 본디 그런 것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도 교회도 모두 마찬가지다. 바로 지금, 예수께서 이기셨던 유혹을 교회는 이기지 못한다. 구원은 이미 잘 알고 있고 잘 보이는 물질과 함께라는 착각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처럼 온 교회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풀게 했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것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신다. 모든 말씀이다. 싫은 말, 찌르는 말, 거북한 말, 피하고 싶은 말, 이 모두를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모르는 것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신 8:3)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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